다윗의 3가지 굳은 결심(2) (시편 57편 1-11절)
3. 세계를 꿈꾸는 삶
본 시편에 나오는 ‘온 세계(5절, 11절), 만민(9절), 뭇 나라(9절)’란 표현을 보면 다윗은 동굴 속에서도 세계를 꿈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큰 위기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혼자만 알고 찬송하기보다 전 세계 만민에게 알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했다(9-11절). 즉 현대 개념으로 말하면 다윗은 동굴 속에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가졌다. 그처럼 자기 주변만 보지 말고 세계를 보고 현재만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
천문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없다고 한다. 광활한 우주를 보면 그 광대함과 신비함에 놀라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한 사실은 수천억 개의 은하 중에 한 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의 구석에 자리한 미소한 태양계의 셋째 별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만 생각해도 지구가 얼마나 귀한가? 그런 소중한 지구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지구가 왜 끊임없이 홍역을 앓게 되었는가? 태초에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려고 했던 사탄 세력들의 반역이 있었고 그 사탄에 미혹된 아담의 불순종 때문이었다. 그 후 지구는 고통, 죄악, 거짓, 폭력이 난무하는 우주의 고민거리가 되었고 거기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은 죄로 인해 신음해야 했다. 그 신음하는 인간을 하나님은 그대로 두고 보시지 않고 예수님을 보내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 복음의 역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이방세계로 전파되어 마침내 한국에 이르렀고 지금은 한국 교회가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 왜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힘을 주셨는가? 복음전파와 세계선교의 사명을 이루라는 뜻이다. 한국 초대교회 때 수많은 해외 선교사로부터 사랑의 빚을 진 한국 교회는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 요새 ‘성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어서 안타깝다면 나눔과 선교에 힘써서 새로운 ‘성숙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제일 관심이 ‘영혼구원과 선교’라면 성도의 제일 관심도 ‘영혼구원과 선교’가 되게 하라. 세계선교에도 최상의 관심을 두라. 자기 주변도 잘 살피지 못하면서 무슨 세계선교냐고 하지 말라. 자기가 완벽하게 된 후 전도하고 선교해야 한다면 아무도 전도하거나 선교할 수 없다. 전도와 선교는 성도의 기본 사명이다.
고독에는 창조적인 고독이 있고 외로운 고독이 있다. 창조적인 고독은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삶으로서 작품인생을 낳지만 외로운 고독은 나눔과 선교를 외면해서 참된 천국 동행자와 비전 동역자가 없기에 생기는 것이다. 교회도 나눔과 선교를 외면하고 성장에만 너무 집착하면 좋은 신앙, 좋은 신학, 좋은 열매, 좋은 결과가 생기기 힘들다. 그러다가 부작용의 힘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무서운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왜 공룡이 멸종되었는가? 너무 덩치가 커져 자기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커진 공룡은 머리의 뇌가 먼 발가락 끝의 신경조직을 조절하기 힘들어졌고 쓸데없이 통나무처럼 커진 꼬리 조직까지 살리려면 계속 먹어야 했다. 그러나 그 덩치를 먹여 살릴 만큼 먹이도 충분치 않았고 그 먹이를 소화시켜 영양분으로 만들어 말단까지 공급하기도 힘들어졌다. 결국 너무 쓸모없이 커져서 멸종된 것이다. 교회도 너무 커져서 생명력과 활력과 가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나눔과 선교에 힘써야 한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이 예수님의 산상팔복 설교를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는 축복의 팔복산 얘기를 들었을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그 산 꼭대기에 이르면 그대는 한 가지 소망, 즉 그 산을 내려가 골짜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만 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산을 축복 산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많은 외적인 축복을 받았지만 진짜 축복은 자기가 받은 축복을 골짜기 사람들과 나누려고 할 때 주어진다.<2017.1.13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