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요한계시록 20장 7-10절)
< 헌신으로 성령 충만해지라 >
사실 본문 말씀에는 여러 가지 의문점을 자아내는 말씀들이 많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주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 펼쳐졌는데도 다시 천년 후에 사탄이 옥에서 놓여 지상 최후의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마귀를 무저갱에서 잠깐 놓아주는가? 그 이유는 정확하게 모른다. 다만 요한계시록 20장 3절을 보면 이미 그런 수순이 예정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귀에게 미혹되어 벌어질 지상 최후의 전쟁에 참전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첫째 부활에 참여해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성도들은 아닐 것이다. 결국 ‘천년왕국의 삶’과 요한계시록 21장 이후에 나오는 흰 보좌 심판 후에 펼쳐질 ‘천국의 삶’은 다른 것이다. 천년왕국 때에는 이 땅에서의 정상적인 삶도 그대로 있고 출산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 천년왕국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억제된 죄성을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이 잠시 마귀를 풀어놓아줄 때 사탄에게 미혹되어 지상 최후의 전쟁에 가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의 죄성이 얼마나 끈질긴가? 죄성은 억제되어 있다가도 기회만 생기면 곧 분출되기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사람은 수시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중요하다. 왜 사람들이 영혼의 곤고함을 느끼는가? 2가지 주된 이유가 있다. 첫째, 하지 말아야할 것을 알면서도 하는 죄 때문이다. 둘째, 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허물 때문이다. 죄와 허물로 영혼이 곤고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령 충만밖에 없다.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는가? 성령 충만은 흔히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도 표현된다. 그런데 기름이 있으려면 피가 있어야 한다. 제물을 잡아 피를 흘리면 기름도 따라 흘러나오듯이 성령 충만의 기름은 십자가의 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 성령 충만!”하고 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를 전제하지 않는 성령 충만은 절대로 믿지 말라. 능력 있다는 교주가 안수해서 성령 충만을 준다는 말에 미혹되지 말고 ‘희생과 헌신이 없는 성령 충만’은 꿈도 꾸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라.
성령 충만 받기를 원하면 십자가의 헌신에 탁월해야 한다.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도 십자가의 헌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 믿음이 자라지 않는가? 힘을 다해 헌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요새 성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향내 나는 삶을 살지 못하는가? 십자가의 헌신이 없어도 성령 충만할 수 있는 줄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으로만 헌신하지 말고 손과 발로도 헌신하라.
요새 교회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이 교회를 보는 눈은 많은 점에서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들 눈에 교회와 교인들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보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령님! 성령 충만!”이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무엇인가 꼭 있어야 할 내실이 없고 예수님을 더 좋아하든지 돈을 더 좋아하는지 구분이 안 가는 교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문제를 안타깝게 여기며 늘 구별된 삶을 살려고 힘쓰라.
구약 시대에 기름을 붓는 의식은 구별된 존재로 성별하려고 행하는 의식이다. 그처럼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성령 충만을 생각할 때마다 ‘능력 있는 삶’을 먼저 연상하기보다 ‘구별된 삶’을 먼저 연상하라.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는 것’보다 ‘구별된 존재란 의식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의식을 가지면 하나님이 죄와 허물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시시때때로 신비하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늘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라.<2016.6.2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