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장 35절
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 (누가복음 7장 35절)
<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 >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혜를 의인화시킨 말씀으로써 의인화된 지혜는 예수님 자신을 암시한다. 조금 어려운 표현이지만 전체적으로 이 말씀은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때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 높여진다는 뜻이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면 아무리 작은 자도 예수님을 높이고 드러내는 자로서 누구보다 큰 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삶이 낮아지는 삶이다. 성육신이 주는 핵심 교훈은 낮아지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유했느냐 가난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유했음을 암시하는 구절도 있고 가난했음을 암시하는 구절도 있다. 다만 태어나실 시점에는 부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말구유에 뉘인 것과 요셉 부부가 아기 예수님을 위한 헌신의 제물을 바칠 때 양 대신 약 10분의 1 가격인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던 사실로 유추할 수 있다(눅 2:24).
예수님이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는 암시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울기도 하셨고 가족에 의해 배척당하기도 하셨고 고향 사람들에 의해 낭떠러지로 떠밀릴 뻔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강력한 왕으로 오시지 않은 예수님의 모습은 높은 위치에 있어도 낮아지고 강한 힘이 있어도 약해지라는 메시지다. 하나님 안에서는 낮아질 때 높아지고 약해질 때 강해진다.
성 프랜시스는 40일 금식 기도를 작정했다가 39일 만에 끝냈다. 제자들이 물었다. “하루만 더 하시지 왜 금식을 푸셨나요?” 프랜시스가 말했다.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하셨는데 내가 어찌 예수님과 같은 경지에 서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낮추며 살았기에 더 높여졌다. 역사상 성자로 인정받는 사람은 다 낮아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낮은 땅에 물이 흘러들 듯이 하나님의 은혜도 겸손한 심령에 흘러든다.
<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살라 >
낮아질 때는 마음만 낮아지지 말고 몸으로도 낮아지기를 힘쓰라. 하나님은 몸으로도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 사랑의 정수는 몸으로도 누군가와 함께하다가 아예 그 사람처럼 되는 것이다. 가정에 갓난아기가 있으면 모두 그 아기처럼 된다. 그때 가정의 공용어는 ‘진지 잡수세요’가 아니라 ‘맘마’가 된다. 아기도 ‘맘마’ 하고 부모와 조부모도 아기가 알아듣도록 다 ‘맘마’ 하면서 천국 가정이 펼쳐진다.
아기 때는 최고 권력자나 대기업 회장인 할아버지도 방바닥을 기면서 아기의 말 역할을 한다. 그때는 아기가 자신의 머리나 귀를 잡아도 부모나 조부모는 오히려 즐거워한다. 사랑하기에 상대처럼 되고 상대의 종처럼 된 것이다. 그 아기가 크면서 철이 들면 거꾸로 부모와 조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 곁에 서 드리려고 한다. 그것이 행복이다. 참된 사랑은 얼마나 나를 버리고 상대처럼 되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체험했으면 하나님을 돕는 손길이 되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해 주시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 참된 축복은 하나님의 사명과 비전에 나도 동참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은혜받는 것도 축복이지만 은혜받고 봉사하는 것은 더 큰 축복이다. 세상에서 돈을 잘 버는 것도 축복이지만 거룩한 비전을 위해 돈을 잘 쓰는 것은 더 큰 축복이다.
행복을 원하면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라. 또한 헌신할 때는 가급적이면 은밀히 해서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가 없게 하라.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보면 이런 소리가 나온다. “괜히 남 좋은 일만 했네.” 그러나 남 좋은 일 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갚아 주심으로 언젠가 내게 더 좋은 일이 생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