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27-32절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건강한 기독교 영성 (누가복음 5장 27-32절)
< 건강한 기독교 영성 >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것은 서로의 죄와 허물을 덮어 주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고 죄악 많은 세상을 피하지 말고 그곳에 들어가 죄인을 이끌어 내라는 말씀이다. 영성을 오해하지 말라. 영성이란 세속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이상을 내면화시켜 세상에서 그 이상을 따라 사는 성품이다.
참된 영성을 내면화시키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도덕과 윤리를 뛰어넘는 거룩한 이상이 있어야 한다. 둘째, 거룩한 이상대로 살려는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셋째, 거룩한 이상을 삶에서 실천하려는 엄격한 자기 훈련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건강한 영성이란 어떤 영성을 말하는가?
1. 평화의 영성
오늘날 많은 상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가족이 남보다 더 상처를 줄 가능성이 큰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잘 모르는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안 만나면 되지만 가족은 계속 같이 있으면서 사랑을 주고받으려는 기대치가 높기에 상처받을 확률이 자연히 커진다. 그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가족들로부터 받는 상처로 인해 너무 고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가족 관계란 한몸 관계이기에 내가 상처받으면 상대도 상처받는다. 그 사실을 깨닫고 상대를 긍휼히 여기고 상처를 마음속에 담아 두지 말고 말씀으로 극복하라. 상처 극복은 쉽지 않지만 극복하면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준비된다. 반면에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가 육신의 병으로 발전되고 그 외에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상처를 잘 극복해 이웃에게 평화를 전하는 피스메이커가 되라.
2. 참여의 영성
본문에서 예수님이 “내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하신 말씀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세상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그처럼 사랑하신 세상을 외면하고 버리는 것은 참된 영성이 아니다. 기독교는 속세를 떠나 홀로 수도하는 종교가 아니고 세상에 들어가 함께 고뇌하는 종교다.
성과 속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영성을 가지면 분리하는 삶이 영성인 줄 알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습성이 생긴다. 또한 특별한 신앙 행위를 해야 신령한 줄로 오해하기에 수시로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모습이 나온다. 분별은 좋은 것이지만 분리는 좋은 것이 아니다. 명예욕을 버리고 작고 비천한 일에도 기꺼이 참여하려는 참여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진짜 신령한 사람이다.
3. 가정의 영성
가정은 진리의 보화가 무진장 숨겨진 곳이다. 세상적인 영성은 가족을 버리고 출가해서 산에서 수도할 때 이뤄진다고 오해하지만 가정을 떠난 영성은 참된 기독교 영성이 아니다. 가정은 영성을 훈련하는 최고 도장이다. 가정에서 선한 열매를 맺고 가족들이 인정해 주는 영성이 건강한 영성이다.
최고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이다.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자기중심주의가 확대된 개교회 중심주의나 지나친 교파 의식도 버리라. 특히 경건과 영성을 자랑하지 말라. 경건과 영성을 자랑하는 태도는 공동체 분열의 씨앗이 된다. 기독교의 가장 소중한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임을 잊지 말고 늘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면서 남을 앞세워 주라. 그때 작품 인생 가능성이 커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