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장 15-17절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알곡 성도 (누가복음 3장 15-17절)
1. 속사람이 강건한 성도
속사람이 강건해지려면 성령 충만해야 한다. 성령 충만은 사실상 신앙생활의 전부와 같다. 성령의 임재로 인해 살인자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했고 키 150㎝에 몸무게 45㎏밖에 되지 않은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위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다. 신앙은 훈련된 싸움의 결과가 아니라 영적인 능력의 결과다. 능력 있게 살면서 알곡 성도가 되기를 원하면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성령으로 충만해서 속사람이 강해지면 자신감이 생긴다.
참된 자신감은 하나님이 나를 지금의 현실로 이끄셨다는 소명 의식을 통해 나타난다.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은 결코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다. 프랜시스는 성도를 흙으로 빚어진 등불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신 존재로서 희망과 빛이 넘치는 삶을 살라. 하나님이 빠진 자신감은 허무한 것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가지는 자신감은 아주 필요한 것이다. 돌다리를 건널 때 주저하고 긴장한 채 흐르는 물을 보면 제대로 건널 수 없다. 그러나 물에 빠지든 말든 자신 있게 뛰면 무사히 개천을 건너게 된다. 성령님이 주신 자신감은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큰 힘이다.
2. 언제나 겸손한 성도
들판에 나가 보면 속이 빈 쭉정이는 머리를 바짝 들고 서 있지만 속이 꽉 찬 알곡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처럼 속이 차고 성숙한 성도일수록 더욱 겸손해진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겸손은 존귀의 선봉이다. 교만하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겸손하면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겸손이 없으면 눈물과 희생을 통해 삶을 깊이 보는 지혜가 생기지 않고 십자가의 기쁨도 알 수 없다. 또한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도 없고 순종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력도 얻지 못하고 좋은 일을 시작했다가도 금방 포기한다.
좋은 일을 시작했다가 성급히 포기하는 것도 교만이다. 어떤 일을 맡았거든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그 일을 온전히 이뤄 내라. 어떤 일을 할 때 반대자는 늘 있게 마련이다. 특히 성공할수록 더 많은 반대를 만나게 된다. 높아질수록 시기하는 사람이 더 생기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고 할 때는 더 많은 사람이 시기하는 마음으로 나쁜 비평을 쏟아 낼 것이다. 그런 말들로 인해 나의 거룩하고 찬란한 꿈을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 어떻든지 포기는 늘 이르다. 맡은 일을 끝까지 잘 완수하는 것이 겸손한 알곡 성도의 모습이다.
3. 종자를 남기는 성도
쭉정이는 껍질만 있기에 번식할 수 없지만 알곡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에 번식할 수 있다. 영생을 나눠주는 알곡 성도의 꿈을 가지라. 전도는 남의 영혼도 살려 주지만 내 영혼도 살려 준다. 전도가 없으면 내 영혼부터 죽지만 전도가 있으면 내 영혼부터 산다. 내 안에 ‘예수’라는 생명의 씨가 있는 것도 귀하지만 그 씨를 다른 심령에 심는 일도 귀하다. 생명이란 활동, 열심, 정열이 내포된 것이다. 생명을 남에게 나눠주려고 할 때 내 생명은 제구실을 하게 된다.
전도하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기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어둠을 깨칠 강력한 열정을 가지고 전도에 나서라. 전도가 없는 것은 성도의 가장 큰 직무 유기 중 하나다. 하나님은 지금도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 줄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 하나님의 소원을 나의 소원으로 삼아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라.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이끄시든지 이끌림 받을 준비를 하라. 믿음의 꽃은 영혼 구원에 나서려는 헌신의 결단과 모험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