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새벽기도와 온라인새벽기도 주필이자 분당샛별교회 담임인 이한규목사는 구원파 이한규목사와는 동명이인입니다. 잘못된 정보 전파가 없도록 주의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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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라 (누가복음 2장 40-47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26-07-01
누가복음 2장 40-47절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라 (누가복음 2장 40-47절)
  < 치우치지 말라 >
 
   본문은 공생애 전 예수님의 삶이 기록된 유일한 본문으로 30년간 숨겨진 역사의 커튼이 잠깐 열린 부분이다. 본문 마지막 구절은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전한다. 그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본문 40절을 보라.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이 구절에서 ‘자라며 강하여지고’란 말은 육적인 성장을 뜻하고 ‘지혜가 충만하며’란 말은 정신적인 성장을 뜻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라는 말은 영적인 성장을 뜻한다. 예수님의 성장은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균형 잡힌 전인적인 성장이었다. 그런 전인성과 균형과 중용의 삶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다.
 
   극단에 치우치면 남들에게 폐를 끼치고 인간성도 점점 병든다. 좋은 것도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긴다. “오직 예수!”라는 말이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은 다 무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을 잘못 받아들여 부모와 선생과 목회자와 어른을 우습게 아는 모습은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깨닫게 한다.
 
   “오직 성경!”이란 말도 다른 책은 절대 읽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오직 성경!”을 내세우며 다른 경건 서적을 인간적인 책이라고 읽지 말라는 교주를 주의하라. 폭넓은 독서가 중요하다. ‘독서’를 멈추면 ‘독선’에 빠진다.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2대 요소는 책과 멘토다. 독서를 멈추면 성장도 멈춘다. 남의 지혜를 인용할 줄도 알아야 자기 지혜도 인용된다. 남의 머리를 빌리도록 폭넓은 독서를 추구하라. 좋은 리더(reader)가 되어야 좋은 리더(leader)가 된다.
   
  <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라 >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갔다(41절). 예수님도 열두 살 때 유월절 관례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다. 그곳에서 절기를 지키고 귀가할 때 예수님은 그냥 성전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사실을 요셉과 마리아는 알지 못했다(43절). 그러다가 하룻길을 간 후 예수님이 동행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44-45절).
 
   예수님이 동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없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이 없는 예수꾼이 되는 것처럼 비극은 없다. 왜 요셉 부부가 예수님을 잃어 버렸는가? 복잡한 성전에서 마음이 분주했기 때문이다. 약 삼백만 명의 인파가 몰린 유월절 축제 마당이었기에 예수님을 잃어버릴 만도 했다.
 
   마음이 번잡하면 중심을 놓칠 수가 있다. 마음이 번잡해서 성경을 볼 시간이나 기도 시간을 잘 내지 못하고 군중 교인들 틈에서 예수님 없이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복된 모습이 아니다. 군중 속에서 휩쓸리다 보면 본인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추구하며 나눔과 선교를 외면하는 모습도 복된 모습이 아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죽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하루도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요새는 계산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를 다니기도 해서 알곡과 쭉정이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모험적인 희생과 나눔을 체험하지 못한 채 인생을 보낸다면 큰 불행이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모험적인 희생과 나눔에 나서야 점점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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