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6장 52-56절
5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3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54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55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56 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믿음 (민수기 26장 52-56절)
< 편견을 최대한 버리라 >
하나님은 가나안에서 얻을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하라고 하셨다(55절). 가나안 땅에서 가문을 명예롭게 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는 암시가 깃든 말씀이다. 명예를 중시하며 성도답게 살려면 남의 명예도 중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나의 명예와 인격을 소중히 여기면서 남의 생명 가치도 소중히 여기기에 편견적인 판단을 최대한 버리게 된다.
편견이 깃든 극단적인 표현이 내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라. 편견에 사로잡히면 진실 싸움이 감정 싸움으로 변질된다. 이론과 논리와 말문이 막힐 때 편견적인 시각으로 자기주장을 객관화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태도다. 인격적이고 명예심을 존중하는 사람은 편견적인 비판을 최대한 자제한다. 남의 기본 인성까지 들먹이며 편견을 가지고 비판하는 모습은 자신이 더 좋지 못한 인성을 가진 표시다.
어떤 회사에 학력이 부족한 차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부서에 부장 자리가 비었어도 그는 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부장 직무 대리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비교적 젊은 명문대 출신이 스카우트되어 부장 자리에 앉았다. 차장은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얼마 후 회사를 떠났다. 그러자 그 부서의 총책임자인 상무가 뒤에서 그 차장의 학력과 인성을 거론하며 편견이 섞인 욕을 해댔다.
그 장면을 지켜본 젊은 직원이 생각했다. '뒤에서 인성 문제를 거론하는 상무님의 인성이 더 문제인 것 같은데 자신은 왜 그 사실을 모를까? 명예롭지 못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저렇게 사고가 경직되는 것일까? 나는 앞으로 살면서 화석화된 사고와 편견적인 언어를 힘써 버리자.' 그 후 그는 자신의 언행에 편견적인 모습이 없도록 힘쓰면서 부족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자비심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수시로 기도했다.
<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믿음 >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살라. 하나님이 나의 언행을 달아보고 계신다. 늘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용서를 앞세우며 교육적인 목적으로 잠시 멀리할 때도 남의 존재 자체를 배타하지는 말라. 또한 인맥과 연줄로 세상을 나누는 무자비함에는 가담하지 말라. 하나님은 성도가 자비롭게 되길 원하신다.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처럼 마음을 쓰라.
스스로 잘 믿는다고 생각할 때 늘 조심해야 할 태도가 있다. “나는 잘 믿는데 나를 왜 이렇게 만드시는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공평을 의심하는 태도다. 자기 의에 대한 낌새가 조금이라도 나타나지 않게 하고 감사가 삶에서 결핍되지 않게 하라. 부족한 사람을 전략적인 교육 목적으로 멀리하거나 정당하게 비판할 때도 결코 정죄하거나 따돌리지는 말라. 특히 경멸의 눈빛이나 편견적인 말로 남을 부당하게 대하지 말라.
사랑과 용서를 앞세워 누군가를 품으면 그 영혼도 살아나지만 내 영혼도 살아나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선한 의지도 살아난다. 편견과 편 가르기에 가담하면서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말라. 인생에서 잠시 소외되는 순간도 필요하다. 소외될 때 하나님을 꼭 붙잡으면 더 좋은 앞날이 준비된다.
사람은 이성보다 감정에 지배될 때가 많다. 마음이 맞으면 친밀감을 느끼고 더 잘해 주고 싶다. 그래도 불의한 편견과 편애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말라. 불의와 불공정으로 불이익을 당하면 사람은 의외로 크게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를 치유하라고 하나님은 내게 사명을 주셨고 나를 현재 위치로 부르셨다. 남의 자리에 서 보고 남의 눈높이에 맞춰 보라. 나의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남의 아픔과 눈물을 이해하라. 사랑이 수반된 믿음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믿음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