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5장 1-8절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당대의 비느하스가 되라 (민수기 25장 1-8절)
< 당대의 비느하스가 되라 >
2000년대 초 성령을 받아 넘어지고 일어나면 아말감이빨이 금이빨로 바뀐다고 주장하는 영성 집회나 영성 세미나가 꽤 유행했었다. 왜 그런 황당한 주장이 유행했는가? 남미에서 한 교회가 그렇게 해서 초대형 교회로 성장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요새 전도가 힘드니까 교회마다 성장의 돌파구를 찾다가 금이빨 전도를 내세우는 집회나 세미나까지 성행한 것이다. 한때 한국 교회 중 약 1,000교회가 그런 금이빨 전도에 가담했다.
사이비 종교에나 있을 법한 금이빨 성령 집회는 결국 10년도 안 돼 그 사이비성이 드러나면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그와 유사한 훈련 방식과 기존의 성경 공부 시스템을 정교하게 섞어 만든 교회 성장 세미나가 한때 또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그 세미나로 인해 교회에서 보수적인 교인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교인이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금이빨 영성 세미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금이빨 전도를 하면 전도가 잘됩니다. 성령 받고 넘어졌다가 일어난 사람을 보면 정말로 아말감이빨이 금이빨로 바뀝니다.” 그런 전도로 믿게 된 교인이 성숙한 믿음을 가지겠는가? 지금 우리 몸안에서도 기적적인 일들이 무수히 생긴다. 그런 기적들을 외면하고 저차원적인 금이빨 기적에 미혹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헛된 기적이란 우상에게 영혼을 팔아넘김으로 하나님과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 가짜 치유나 가짜 축귀에도 쉽게 미혹되지 말라. 그 말은 치유와 축귀 자체를 부인하라는 말이 아니라 가짜에 속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남용하고 훼손시키는 일에 미혹되지 말라는 말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 때 방언 기도를 하고 방언 통역까지 한다. “산다르 마리아 우카 산다르 우마라카야 바리토 샤마이. 지금 관절염이 나은 분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뇌종양이 사라진 분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러 명이 일어나 치유된 표시로 손을 흔든다. 문제는 다음 집회에도 비슷한 말을 하면 똑같은 사람이 일어서서 손을 흔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훼손하는 거짓 치유로 여기는 것이다. 거짓 영성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훼손하면 진짜 기적과 진짜 치유는 없게 된다.
거짓 치유자들은 주장한다. “예수 이름을 선포하면서 기적과 치유를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데 그게 왜 예수의 이름을 훼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병을 치료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그런 능력과 권세가 있다. 문제는 치유와 축귀 선전자들이 거짓 사칭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언행을 보이는 것이다.
이단 추종자들은 말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고 병도 고친다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지 왜 떨어뜨리는 것인가?”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와 축귀를 일으킨다면서 무속적인 행위와 헛된 선포로 끝날 때가 많은 것이 문제다. 즉 단번에 온전히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무속인들이 하듯이 “나가라! 나가라!”라고 귀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몸을 붙들고 흔들고 때리면서 몇 시간 동안 축귀 의식을 하는 치유 사역 등이 문제인 것이다.
어떤 치유 사역자는 집회 때마다 같은 사람에게 치유와 축귀를 선포한다. 그러면 다음 집회 전에 또 그에게 병과 귀신이 새로 들어온 셈이 된다. 주일에 치유되었다가 주중에 재발하고 그 다음 주일에 또 치유되었다는 식의 태도가 예수님의 이름을 권세 없는 하찮은 이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기복주의 왕국을 쌓는 거짓 미혹자들에 대해 크게 분노하신다. 그런 거룩한 분노를 품고 이단과 기복주의를 멀리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당대의 비느하스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