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성수의 위대한 가치 >
딸 바보인 A 목사가 있었다. 그는 수시로 기도했다. “하나님! 부족한 제게 천사 같은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딸은 약간 소심한 것 빼고는 큰 문제없이 잘 자라 주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재미난 행사에 참석하느라고 처음 주일예배를 빠졌다. 그 전부터 예배에 흥미를 잃어버린 조짐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해 오던 성가대 바이올린 봉사를 그만두고 형식적으로 예배만 참석했다. 그러다가 A 목사가 자녀 교육 문제에서 최상의 가치로 두는 주일예배까지 빠진 것이다.
A 목사의 경우 죽을 때 딸에게 유언으로 남길 첫 번째 말은 주일성수를 꼭 하라는 것이고 유일하게 요구하는 소원도 주일성수였다. 학교 공부보다 주일성수를 더 중시하도록 수시로 가르쳤다. 주일성수에 신실한 심령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일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말씀을 통해 바른 믿음과 비전을 제시받고 성도 간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딸이 난생처음 주일을 범한 날 A 목사는 굳게 결심했다. 앞으로 딸이 스스로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까지 딸과의 따뜻한 소통을 전략적으로 끊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날부터 딸과의 마주침을 최대한 피하려고 교회 목양실을 주생활 터전으로 삼았다. 그 정도라면 웬만한 딸은 “아빠! 죄송해요.”라고 한 후 주일에 나올 법한데 딸은 미움이나 반항 때문이 아닌 소심함과 쑥스러움 때문에 그 말을 못했다.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서 딸에게 “이제 주일에 나와라.”라고 먼저 따뜻하게 손을 내밀면 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는 딸이 스스로 주일성수를 결단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 말을 꾹 참았다. 언젠가 스스로 주일예배에 참석하면 그때부터는 천국에 갈 때까지 평생 주일을 지키기를 원했고 아빠가 주일성수에 최상의 가치를 둔다는 사실을 확실히 딸의 마음에 깊이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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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수 문제로 딸의 얼굴조차 쳐다볼 수 없었던 4년 반의 세월 중에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직접 말은 안했어도 아내를 통해 딸의 진학문제, 진로문제, 친구문제, 여행문제, 그리고 심리문제까지 세심하게 코칭을 했다. 주일성수의 위대한 가치를 깊이 마음에 각인시킬 목적으로 침묵은 했지만 침묵 속에도 깊고 세심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하나님도 종종 침묵하실 때가 있다. 그 침묵에도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의 손길과 선한 목적이 있고 결국 신실한 영혼에게는 최종 승리가 주어질 것이다. <21.5.5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