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적보다 말씀을 추구하라 >
지금은 과거보다 물질적으로는 편리해졌지만 정신적인 만족은 오히려 줄었다. 지식이 많아지면 확신이 커져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이 커지고 있다. 과학 지식과 문명이 불안을 없애지 못하기에 불안을 없애 줄 표적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표적을 찾아다닐수록 내면은 더 불안해지기에 예수님은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해서 더 불안에 빠진다고 말씀하셨다. 표적과 기적이 없어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진짜다.
믿음이 없어 불안에 빠진 사람이 표적을 추구하면서 표적을 보여 준다는 곳에 몰리기에 세상이 불안하면 사이비 종교가 더 성행한다. 예수님 때도 로마의 압제로 경제난이 심했고 고난과 핍박으로 내일이 불안했기에 사람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겨도 속으로는 표적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몰려든 무리들도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고 그때 예수님은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셨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유념하고 체육관 기적 집회 등을 맹목적으로 더 이상 찾아다니지 말라.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는가? 출애굽은 했지만 광야에서 미래가 암담했고 너무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세까지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자 불안함을 달래려고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겼기에 기적적인 축복만 준다면 금송아지도 좋다고 했다.
기적만 준다면 우상숭배도 좋고 미신이나 신비주의도 좋다면서 잘못된 기적 집회를 찾아다니는 것은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이다. 병을 낫게 해 주고 특별한 구원과 선택을 보증한다는 달콤한 말과 함께 표적을 내세우는 곳으로 몰려가는 것은 불행의 구덩이로 추락하는 지름길이다. 당시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온 것은 말씀을 듣기 위해서나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적을 보기 위해서였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치셨다.
거짓 축복과 표적에 미혹되지 말라. 또한 솔로몬이나 요나의 말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라. 말씀을 듣고 지킬 때 진짜 복과 표적이 따라온다. 불안할수록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에 몰두하라. 경제가 어렵고 병들고 사회가 혼란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하라. 힘들고 불안해도 기적에 몰두하기보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에 몰두하면 반드시 역전승의 역사가 나타난다. <21.5.1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