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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대로 거두는 길 (호세아 8장 1-4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20-06-08
호세아 8장 1-4절
1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2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3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4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심은 대로 거두는 길 (호세아 8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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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은 대로 거둔다 >
 
   약 10여 년 전 한 스포츠 센터에서 지하 사우나 이용권으로 4층의 피트니스 시설을 이용했다고 센터 매니저와 청년 두 명이 필자를 붙잡아 죄인처럼 다그쳤다. 그때 필자가 피트니스 시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본 복수의 목격자가 있다면서 CCTV에 다 나오니까 순순히 자백하라고 했다. 목회자로서 소리칠 수 없어서 낮은 소리로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하소연하듯이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들은 전혀 필자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필자가 “당신들이 틀렸다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하자 매니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제 손에 장을 지지고 10억 원을 물겠습니다.” 그릇된 확신이 말까지 함부로 하게 했다. 결국 CCTV를 정밀하게 살펴보고 누명을 씌운 것을 알고 센터에서 필자에게 사과했다. CCTV가 없었다면 몇 명이 목격했다는 얘기로 범죄자가 될 뻔했다. 그때 누명을 쓰는 것이 얼마나 큰 심적 고통을 주는지 생생히 깨달았다.
 
   사람이 가장 한이 맺힐 때는 억울한 누명을 쓸 때다.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가고 예전처럼 사형까지 당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그 한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것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잘 모르고 누군가를 범죄자로 몰 수 있다. 그런 일도 있으면 안 되지만 그래도 모르고 한 것이니까 그나마 낫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조작해 누명을 씌운다면 그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현대 형사소송 체계의 대 원칙으로 “100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어떤 죄의 누명을 씌우는 것은 그 죄를 짓는 것보다 100배는 나쁜 죄란 암시다. 물론 이 땅에서는 그렇게 누명 씌우는 죄를 100배로 묻고 처벌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그 죄를 가장 불의하게 여기고 무섭게 심판하실 것이다.
 
   공권력은 엄중히 범죄를 규명해 합당히 처벌하되 그 과정에서 무죄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지 않도록 지극히 주의해야 한다. 유한한 사람이 정의를 온전히 세우기는 힘들어도 힘써 노력하면 무죄인을 범죄자로 모는 일은 줄일 수 있다. 특히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려고 조작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범죄다. 사람 개인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특히 국가 공권력은 더욱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세종대왕은 죄가 무거운지 가벼운지 정확하게 모르면 가벼운 죄에 해당하는 형벌을 주라고 했다. 죄를 봐주라는 뜻이 아니라 죄를 키우거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다양한 계몽과 징벌을 통해 조작해서 누명을 씌우는 일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래도 그런 일을 다 없앨 수는 없지만 크게 줄일 수는 있다. 남에게 누명을 씌워야 내가 사는 경우를 닥치면 내가 살려고 남에게 누명을 씌우기도 하지만 그런 일도 최대한 없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계몽해도 누명을 씌우는 일이 인간 사회에서 완전히 없어질 수 없기에 언젠가 나도 누명을 쓰는 경우를 당할 수 있다. 그때 너무 억울하고 한이 맺히고 죽고 싶어도 계속 꿋꿋이 살라. 하나님이 그 상황을 다 지켜보심을 믿고 의연히 대처하면 언젠가 반전의 역사가 나타난다. 세상도 ‘사필귀정’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더욱 의롭게 심판해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고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억울함을 이 땅에서 풀어주지 않으면 하늘나라에서 풀어주고 현재 혹은 당대에 풀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혹은 후대에 풀어주실 것이다.
 
  < 심은 대로 거두는 길 >
 
   살다 보면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다. 그런 은혜를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언약을 어기지 말라
 
   왜 원수가 독수리처럼 이스라엘을 덮쳤는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이다(1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그의 자손을 번성하게 한다는 복을 약속하셨다. 그 언약은 지금도 성도에게 유효하다. 구원받은 성도도 죄와 허물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성도의 자격을 박탈하지 않으신다. 그런 언약적인 사랑을 확신하면 문제나 상황 변화에도 사랑과 감사와 헌신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성도는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하나님과의 약속도 잘 지키고 사람과의 약속도 잘 지킴으로 성도답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려면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기 전에 하나님과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바쁘게 살지 말라. 쫓기듯이 허겁지겁 살면 조만간 자기 자리에서도 쫓겨나기 쉽다. 믿음의 여유를 가지고 좋은 사람과 교제하는 어울림이 있어야 공동체에 울림을 주며 살 수 있다.
 
   언약을 지키고 어울리라고 해서 꼭 같이 불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언약 안에서 사명을 따라 헤어질 수도 있다. 언약 안에서 헤어지는 것을 새로운 창조적인 삶을 위한 파송으로 여기라. 실제로 교회가 커지면 교인이 각지로 흩어져 곳곳에서 바나바나 루디아 성도로서 교회를 주도적으로 일으키는 선교 사명을 가지는 것이 좋다. 언약 안에서는 슬픈 이별도 창조적 이별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만큼 언약 성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2. 참된 기도를 드리라
 
   이스라엘은 당면한 무서운 심판을 피하려고 하나님을 아는 척하는 기도를 했다(2절). 그러나 문제가 생긴 후 회개하는 척하는 기도는 역사를 일으키지 못한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하는 참된 회개 기도가 진짜 큰 역사를 예비한다. 믿음의 기도를 삶의 기초로 삼으면 행복과 성공도 따라온다. 기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가벼운 기도도 가벼운 것이 아니다. 기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이다.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목사가 생각했다. “지금 정치가 어려운데 목사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중간 입장을 취하면 비겁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한쪽 입장을 취하자 교회 개척 때부터 신실하게 섬겼던 부부가 실망했다면서 교회를 떠났다. 그런 일을 당하고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한쪽 입장에 서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그때 새롭게 결심했다. “진리와 거짓에서는 반드시 진리의 편에 서야 하지만 질서를 추구하는 우측과 변화를 추구하는 좌측이 맞설 때는 모두가 한쪽 편에 서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성도를 섬기자.”
 
   수많은 정치 주제에서 완벽히 중간에 있을 수는 없다. 정치 주제마다 내가 어느 한쪽을 택할 수 있다. 다만 내 편만 진리라고 주장하거나 강요하지 말라. 또한 나의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공동체의 아픔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기에 그때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기도다. 누군가의 아픔을 껴안고 하는 진실한 기도는 최선의 행동이 될 수 있다. 은밀한 기도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기도할 때마다 가끔 놀라는 일은 진실하게 기도하면 기도의 씨를 심은 대로 최선으로 거둔다는 사실이다.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
 
  3. 우상숭배를 버리라
 
   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서 세워진 왕들과 지도자들을 모른다고 하셨는가?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다(4절). 우상숭배가 무엇인가? 하나님 이외의 것을 바라보는 것도 큰 의미에서 우상숭배다. 또한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복’을 앞서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우상숭배다.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 너무 지나친 것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자녀를 사랑하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는 말라. 개를 사랑하는 마음도 너무 지나치면 안 된다.
 
   나의 뜻과 정성과 사랑을 하나님께 더욱 드리려고 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되 사람을 의존하려고 하지 말라. 사람은 의존할 대상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권력 중 하나인 국가 권력조차 그렇게 믿을 대상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이후 10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 기관차 역할을 했던 중국 덕분에 우리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비교적 쉽게 극복했지만 너무 중국 의존적인 경제가 된 것이 또 다른 문제를 낳아서 수시로 중국의 갑질 행위를 지켜봐야 했다. 의존적인 삶에는 늘 리스크가 따른다.
 
   요새 경제적인 힘의 약화로 위기를 느낀 미국이 1980년대 일본에 썼던 전략처럼 중국의 버블 경제를 유도해 무너뜨리는 방법을 쓰는 것 같다. 그 전략이 일본에게는 통했지만 중국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미중 무역 전쟁이 코로나 사태로 잠시 소강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 불허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혜롭게 우리 위상을 높이기에 힘쓰고 외세를 의존하려고 하지 말아아 한다. 이 세상에 온전히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다.
 
  < 하나님만 의지하라 >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면서 사람을 의존하지 말라. 남을 딛고 성공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만 꼭 붙잡고 나의 힘과 땀과 지혜로 성공하려고 하라.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되 성공을 위해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말라. 남과 사귈 때 순수하게 사귀고 섬기려고 해야지 나의 외로움을 덜고 성공을 이루려는 인맥으로 활용하려고 사귀지 말라. 인간적인 연줄은 썩은 동아줄처럼 끊어질 때가 많다.
 
   성공하면 마음을 겸손히 가지고 소리를 낮추고 더 나를 감추라. 내가 드러나면 내 이름을 이용해 아는 척 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이름을 팔아 성공하려는 사람이 생긴다. 심지어는 어리석은 사람으로부터 투자도 받고 뇌물도 받아 챙긴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범죄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힘이 생기면 아무나 가까이하지 않는다. 연줄과 인맥을 이용해 성공을 꾀하는 사람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황이 어려우면 사람들은 더욱 의지할 대상이나 사람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더 어려움에 빠질 때가 많다. 어려울 때는 더욱 하나님께 돌아서서 하나님 안에서 길을 찾아내야 한다. 세상이 어둡다고 느끼면 내가 있는 곳에서 의의 등불 하나라도 밝히라. 가끔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고 희망의 씨를 열심히 심어서 더 많은 평화와 축복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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