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3대 통로 (요한복음 3장 31-36절)
1. 십자가의 대속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달렸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거의 똑같은 죄인이다. 사람이 분류한 큰 죄와 작은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다. 모든 죄는 다 하나님의 진노 대상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이란 사실만 있다. 큰 죄나 작은 죄 모두 치명적이기에 하나님의 선택 문제에서 중죄인과 경죄인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옛날에는 물건을 떨어뜨리면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실험을 통해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이 동시에 떨어짐을 증명했다. 죄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죄는 깊은 지옥에 빨리 떨어뜨리고 경죄는 얕은 지옥에 늦게 떨어뜨리는 줄 알지만 지옥에 가는 것이 같다면 중죄와 경죄의 구분은 거의 무의미하다. 때로는 경죄인보다 중죄인이 더 빨리 하나님께 돌아온다.
누구도 자기 의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선택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셔야 한다. 사람끼리의 비교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믿기 전에는 비교했어도 믿은 후에는 비교할 이유가 없어졌다.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 기쁨을 초월하는 기쁨이 이미 주어진 존재로서 그 기쁨은 외적인 상황에서 생기지 않고 내적인 샘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구원은 십자가의 복음을 영접할 때 받는다. 예수님은 잘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구원하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죄를 대속해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 죽여야 살고 올라서야 높아지는 세상에서 죽어야 살고 낮아져야 높아지는 십자가의 진리를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 진리는 생각을 초월했기에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복음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32절).
아무리 잘 설명하고 설득해도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없기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 남의 변화를 원하면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려고 하기보다 먼저 내 십자가를 짐으로 감동을 통해 변화시키려고 하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앞세워 복을 얻는 것’의 의미보다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것’의 의미가 크다. 가로수 불빛이 꺼져야 밤하늘의 별빛이 더욱 밝게 보이듯이 내 십자가를 질 때 내 삶의 빛깔도 더욱 밝아진다.<2019.2.6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