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사랑을 실천하라(2) (요한복음 3장 16-21절)
이웃을 살려주려고 하면 자기 삶도 풍성해지고 이웃을 죽이려고 하면 자기부터 피를 흘리게 된다. 세계를 사랑한다고 거창하게 말하기 전에 이웃을 잠잠히 사랑하면서 세계로 시선을 돌리라. 지나친 경쟁심을 버리고 사명을 따라 살라. 뚜렷한 사명감을 가지고 사람의 경쟁 체제에 편입되지 않는 것도 축복이다. 경쟁적인 강탈보다 창조적인 확장으로 지경을 넓히라. 경쟁심이 지나치면 낮은 차원의 성공은 해도 높은 차원의 성공은 못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성도의 진짜 싸움 대상은 사람이 아닌 사탄이다. 사람과 지나치게 경쟁하면 믿음과 축복의 높은 고지를 차지하기 힘들다. 남이 바르게 잘 되면 축하해주고 잘못된 길로 가면 불쌍히 여기라. 사명감을 가지고 사람을 경쟁 대상이 아닌 사랑 대상으로 볼 때 인물 성도의 길이 열린다. 왜 사도 바울이 위대한 인물이 되었는가? 사랑과 사명감을 가지고 영혼구원을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한 교회에서 주일학교가 크게 부흥했다. 그 부흥은 주일학교 교사가 직접 학생도 모으고 심방도 하면서 열심을 낸 결과였다. 기독교 교육학 박사의 방법보다 평범한 선생님의 열심이 더 큰 역사를 일으킨다. 열심이 없는 방법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하나님의 일은 열심히 충성하는 것이 최고다. 설교학 교수가 설교를 못할 때도 많고 기독교 교육학 교수가 기독교 교육을 못할 때도 많다. 진리의 성취는 방법이나 이론보다 열심으로 이뤄진다.
베드로와 바울은 둘 다 ‘끝내주는 열심’이 있었다. 베드로는 고기가 안 잡혀도 밤새도록 빈 그물을 던지는 끈기와 열정이 있었다. 변화되기 전에 바울은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것을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알았다. 그 열심을 하나님이 보시고 잘못을 바로잡은 후 쓰려고 급히 그를 부르셨다. 그때 그의 인생길과 방향이 완전히 변했지만 충성스런 열심은 그대로여서 결국 예수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했다.
어디서든지 충성스런 일꾼이 되라. 적당히 일하는 것은 오히려 힘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눈치 보면서 자꾸 시계를 보면 시간이 더 안 간다. 열심히 일해야 시간도 잘 간다.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내가 맡은 일은 열심히 틀림없이 하라. 바울의 놀라운 충성심은 어디서 나왔는가? 사랑이다. 그에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넘쳤기에 예수님을 위한 열심도 넘쳤다. 사랑이 있으면 저절로 충성하게 된다.
왜 부모가 충성스러울 정도로 자식을 위해 일하는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살림하는 주부는 자녀가 수학여행 떠나고 남편도 밖에서 먹고 온다고 하면 식사를 혼자 대충 한다. 그때는 한 끼 식사 준비도 힘들게 느낀다. 그처럼 자기만을 위해서는 식사 준비를 안 해도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 반찬 하나라도 더 맛있게 준비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행동이다. 사랑하기에 충성하는 것이다. 사랑할 때 지혜도 생기고 행복도 넘친다.<2019.2.2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