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의 온라인새벽기도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새벽기도
주일설교말씀
칼럼모음
선교이야기
사랑방소식
네트영어
새로 등록된 글
새로 등록된 댓글
2018년 5월호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8-04-18
이사야 58-66장/ 에베소서 1장
5/01(화) 이사야(160) 가장 아름다운 사람 (사 58:1-9a)
5/02(수) 이사야(161)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1) (사 58:9b-14)
5/03(목) 이사야(162)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2) (사 58:9b-14)
5/04(금) 이사야(163) 응답받는 4대 기도 (사 59:1-8)
5/05(토) 이사야(164)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사 59:9-21)

5/07(월) 이사야(165) 세상의 빛으로 사는 길(1) (사 60:1-3)
5/08(화) 이사야(166) 세상의 빛으로 사는 길(2) (사 60:1-3)
5/09(수) 이사야(167)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1) (사 60:4-9)
5/10(목) 이사야(168)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2) (사 60:4-9)
5/11(금) 이사야(169) 천 배의 축복을 꿈꾸라(1) (사 60:10-22)
5/12(토) 이사야(170) 천 배의 축복을 꿈꾸라(2) (사 60:10-22)

5/14(월) 이사야(171) 성령충만으로 이뤄질 역사 (사 61:1-11)
5/15(화) 이사야(172) 하나님이 보시는 나 (사 62:1-5)
5/16(수) 이사야(173) 성도에게 절망은 없다(1) (사 62:6-12)
5/17(목) 이사야(174) 성도에게 절망은 없다(2) (사 62:6-12)
5/18(금) 이사야(175)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 (사 63:1-6)
5/19(토) 이사야(176) 참된 부요 (사 63:7-19)

5/21(월) 이사야(177) 기도하면서 기다리라 (사 64:1-12)
5/22(화) 이사야(178) 하나님의 크신 사랑(1) (사 65:1-12)
5/23(수) 이사야(179) 하나님의 크신 사랑(2) (사 65:1-12)
5/24(목) 이사야(180) 진리의 기초가 아닌 것 (사 65:13-16)
5/25(금) 이사야(181) 천국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사 65:17-25)
5/26(토) 이사야(182) 해산의 축복을 얻는 길(1) (사 66:1-9)

5/28(월) 이사야(183) 해산의 축복을 얻는 길(2) (사 66:1-9)
5/29(화) 이사야(184) 서로 힘써 위로하라 (사 66:10-14)
5/30(수) 이사야(185) 참된 믿음의 실체 (사 66:15-24)
5/31(목) 에베소서(1) 평안을 주는 3대 요소 (엡 1:1-2)
마중물 : 나의 변화를 추구하라
 < 이단에게 미혹되지 말라 >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생명의 길을 여셨다. 부활은 가장 중요한 기독교 교리 중 하나다. 그래도 성도가 죽은 후 현세에서 육신으로 바로 부활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부활의 진리는 궁극적인 부활을 믿는 것이고 큰 의미에서 육신의 부활을 넘어 인간성의 부활, 인간관계의 부활, 생명력 넘치는 삶의 부활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부활의 진리를 왜곡해서 죽어도 지금 현세에서 부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사이비가 된다. 부활 교리를 가장 강하게 믿는데 왜 믿음이 좋다고 하지 않고 사이비라고 하는가? 그런 식으로 많은 영혼을 미혹해 파멸시키고 교주의 왕국을 쌓기 때문이다. 어떤 사이비 교주는 부활을 증명하겠다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의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상 아무도 사람을 다시 살리지 못했다. 중요한 교리라도 몰상식하게 문자 그대로 그 교리를 실제 삶에 적용하면 안 된다.
   
  부활 교리가 현세에서 사람 마음대로 부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교리가 아니듯이 신유 교리도 사람 마음대로 신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교리가 아니다. 신유 교리는 육신의 신유 이상의 신유와 궁극적인 신유를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으면 신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지 “믿으면 치유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다. ‘신유의 주님’을 믿는 것과 ‘주님의 신유’를 믿는 것은 많이 다르다. 이단은 정통과 디테일에서 다르다. 같은 줄 알았는데 끝이 다르기에 ‘다를 이(異) 자’와 ‘끝 단(端) 자’를 써서 ‘이단’이라고 한다.
   
  믿음의 대상은 ‘신유’보다 ‘주님’이 되어야 한다. 신유보다 주님에 더 초점을 맞춘 바른 믿음은 오히려 신유를 따라오게 하지만 주님보다 신유에 더 초점을 맞춘 기복적인 믿음은 오히려 신유를 멀어지게 한다. 아무리 큰 마이크 소리로 “치유됩니다. 치유되었습니다.”라고 외쳐도 헛된 외침일 뿐이다. 주님은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지 주님도 바라보고 동시에 신유도 바라보면서 두 마음을 품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결혼 상대가 자기 존재만 바라보기를 원하지 자기 존재와 더불어 자기 물질도 노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유 집회 광고지 문구를 보면 “신유의 종! 능력의 종! 와보라!”라고 선전한다. 또한 그 신유의 종으로 인해 신유가 일어났다는 사람의 간증도 실려 있다. 사람이 죽을병에 걸리면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약한 심령이 된다. 그때 사람이 한참 높아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신유 집회’나 자칭 ‘신유의 종’을 찾아가는 것은 정말로 지푸라기를 붙드는 행위다. 능력이 없어보여도 자기를 제일 사랑하는 담임목사의 겸손하고 순수한 기도가 오히려 더 신유를 가져다준다.
   
  필자가 소속된 기독교선교연맹(C&MA, 미국성결교)은 ‘신유의 교리’를 중시한다. C&MA가 내세우는 4중 복음은 ‘구원의 주, 성결의 주, 신유의 주, 재림의 주’이다.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의 성결교에서 내세우는 4중 복음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다. 그만큼 신유를 중시하기에 C&MA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는 “믿으면 치유된다.”라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치유 집회를 대대적으로 열어 사역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1918년 1월, 심슨 목사가 74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신유란 종착지가 있고 하나님이 쓰실 때까지만 성도에게 주어진 약속으로 여겼다. 그리고 1919년 10월 30일 하나님 앞으로 평화롭게 떠났다. 그는 결코 남에게 신유 교리를 강요하지 않았다. 또한 신유 기도를 남발하지도 않았고 거룩한 삶을 위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 신유가 이뤄지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심슨은 예배나 집회나 캠프 때 신유가 핵심 주제가 되지 않게 했고 성도의 성숙한 삶, 죄인의 구원, 그리고 세계선교를 신유보다 훨씬 중시했다. 그는 많은 성도들이 존경하고 따랐지만 자신을 바라보게 하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성도들이 ‘주님’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치유의 복음(The Gospel of Healing)>이란 책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치유는 사려 깊고 철저한 성경적인 고찰이 요구된다. 치유는 복음의 일부지 전부가 아니다.” 그는 치유가 외면되어도 안 되지만 너무 강조되어도 안 된다고 여겼다. 또한 거짓 치유를 철저히 배격했다.
   
  이단 교주가 자기를 ‘치유의 종’이라고 높이고 치유 집회를 통해 인간 왕국을 키울 때 거기에 가담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말한다. “치유 집회가 뭐가 나쁜가?” 문제는 그런 집회에 거짓 치유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치유 집회 인도자가 치유를 특별히 줄 수 있는 것처럼 안수하는 것도 큰 문제다. 미국에서도 20세기 초부터 그런 거짓 집회가 확산되면서 성장주의, 외형주의, 기복주의가 점차 만연해지자 그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바른 교회를 위해 선지자적인 외침을 발한 유명한 목회자 겸 저술가가 있었다. 바로 토저(Tozer)다.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다. 치유를 위해 기도하라. 믿음으로 기도하면 치유의 능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치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손길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치유의 하나님임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되 “기도하면 낫는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지는 말라. 간절히 기도해도 낫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 사례도 많은데 주님을 믿고 기도하면 낫는다고 단정해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된다.
   
  이단 교주는 집회에서 “아무개가 나았습니다.”라고 수시로 선포한다. 낫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아니면 말고...” 하고 무책임하게 나온다. 그리고 다음 집회에서 또 “아무개가 나았습니다.”라고 한다. 마치 “아무나 내 말에 걸려라.”는 식이다. 그런 비양심적인 사람에게 양심적인 순진한 성도가 무수히 속아 넘어가는 것이 문제다. 이단 교주에게 미혹되면 그의 배만 불릴 뿐 순진한 성도는 이용만 당한다. ‘믿음 치유’를 내세우며 수없이 거짓 치유를 선포하는 이단 교주에게 미혹되지 말라. 하나님은 그런 집회에 찾아다니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 늦더라도 바른길로 가라 >
   
  간증도 지혜롭게 잘해서 치유 간증이나 성공 간증이 기복주의의 통로가 되지 않게 주의하라. 복과 성공과 치유의 추구가 잘못은 아니지만 믿음의 주목적이 되게 하면 안 된다. 믿음의 주목적은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에 있어야 한다. 사람의 영광과 복이 없다는 말이나 외면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오히려 사람에게 진짜 영광과 복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헌신적인 교인은 사회의 희망이 되지만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기복적인 교인은 사회의 부담이 될 때가 많다.
   
  치유 간증이나 선포도 나중에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일정 시간이 지나 치유가 확실한 것으로 여겨질 때만 해야 한다. 낫지도 않았는데 믿음으로 미리 나았다고 선포하는 것은 믿음을 빙자한 그럴듯한 거짓말이다. 그런 말을 ‘거짓말’로 여기지 않고 ‘믿음의 말’로 여기는 것은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대중 앞에서 수시로 거짓말을 하는 ‘치유의 종’을 결코 따르지 말라. 거짓 치유 집회에 미혹되는 것은 차라리 보이스피싱 사기꾼에게 미혹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이단에게 미혹되면 영혼, 가정, 시간, 물질 등을 다 잃는다.
   
  치유를 내세워 상업적으로 간증시키는 모습도 주의하라. 치유 간증을 잘못 들으면 기복주의자가 되기 쉽다. 성공 간증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잘 봉사해서 크게 성공했다고 금방 간증을 세우면 교회 성장에는 도움이 되어도 그 간증을 잘못 듣고 성공 욕심에 젖어 봉사하는 교인이 많아질 수 있다. ‘주님’이 목표가 아닌 ‘성공’을 목표로 봉사하는 교인이 많아지면 교회가 외적으로는 커져도 내적으로는 커지는 것이 아니다.
   
  치유 간증이나 성공 간증은 자랑이 없는 겸손한 언어로 매우 주의해서 해야 한다. 잘못 간증하면 예수님을 사모하게 하기보다 기복주의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성공해서 혹시 간증하는 자리에 서게 되어도 자랑하거나 광고하듯이 간증하지 말고 거짓이 없이 겸손하게 간증하라. 간증하는 자리가 인기 가수 무대처럼 인기 간증 무대가 되게 해도 안 되고 더 나아가 간증이 사례비와 인기에 맛들인 인기 간증 강사의 밥벌이 수단이 되게 해도 안 된다.
   
  봉사해서 복 받았다는 간증을 듣고 복을 염두에 두고 봉사했다가 복이 없다고 시험에 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하나님 잘못이 아니라 기복주의에 미혹된 자기 잘못이다. 그래서 바른 목회자는 헌신적인 봉사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성공한 사람에게 “성도님! 성공한 얘기를 간증하세요.”라고 무대를 마련해주기보다 오히려 “성도님! 성공을 자랑하지 말고 변함없이 겸손하게 은밀히 봉사하세요.”라고 멘토링을 해준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내적인 기쁨과 보람과 행복도 잃지 않고 성공도 아름답게 지속되기 때문이다.
   
  간증을 지혜롭게 잘 하거나 지혜롭게 잘 듣지 않으면 기복주의에 빠질 수 있다. 기복주의나 성공주의는 단기간의 성장도 촉진할 수 있지만 단기간의 몰락도 촉진할 수 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워 초대형 교회가 된 LA에 있는 로버트 슐러 목사의 수정교회는 2010년에 파산해 그 화려한 교회 건물이 가톨릭교회에 팔렸다. 그 교회는 매주 사람을 초청해 설교 전에 성공과 치유와 감동적인 사연을 간증시키면서 성장도 빨랐지만 몰락도 빨랐다.
   
  성공한 투자 얘기를 듣고 다단계에 미혹되듯이 성공 간증을 잘못 들어 영혼이 기복주의에 미혹되지 않게 하라. 제자 10명이 기복주의자 10만 명보다 낫다. 하나님 나라에 제자는 플러스가 되지만 기복주의자는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 기독교선교연맹(C&MA) 총회가 생기는 기쁜 상황을 맞이해서 필자가 동료 목회자들에게 말했다. “부흥이 늦더라도 바른길로 가면서 한국 교회의 부활에 일익이 됩시다.”
   
  < 사람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 >
   
  사람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 특히 믿음 자랑, 영성 자랑, 헌신 자랑은 더욱 주의하라. 좋은 것도 자랑하면 좋은 것의 가치도 떨어지고 하나님의 보상도 오다가 사라지고 오히려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징계를 받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 원리를 알고 힘써 자랑을 삼가는 것이 은혜받은 증거이고 은혜받을 증거이며 삶의 최대 지혜 중 하나다. 교회가 왜 평안해지는가? 힘 있는 교인이 자랑을 삼가고 겸손한 마음으로 선한 흐름을 만들기 때문이다.
   
  필자가 멘토처럼 여기고 교제하는 A 목사가 있다.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목회자로서 교단을 초월해 20년간 분당에서 필자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목사다. 그는 목회를 잘하고 몇 년 전에 아름답게 은퇴했다. 섬기던 교회는 작은 교회도 아닌데 교회 전체에 은혜와 평화가 넘쳤다. 그렇게 된 데에는 장로들 역할이 컸다. 장로들이 하나같이 좋았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선한 영향을 끼친 한 장로의 역할이 컸다. 그 장로가 그렇게 좋은 장로가 된 이유는 깊은 은혜 체험과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장로가 죽을병에 걸렸다. 의사가 더 이상 못 산다고 했다. 임종을 앞두고 육체의 모든 기능은 거의 죽은 상태였다. 사람의 기능 중에 최후까지 지탱되는 기능은 귀다. 사람이 죽었다는 판정이 나도 귀는 30분간 소리를 더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죽었다고 판명이 나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 말하면 죽은 사람이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장로의 육체 기능이 거의 죽은 상태에서 A 목사가 병원에 도착했다. 그때 임종을 지켜보려고 모인 성도들이 말했다. “목사님 오셔. 목사님 오셔.” 그 소리가 죽기 직전의 장로에게 아련하게 이렇게 들렸다. “예수님 오셔. 예수님 오셔.” 그때 A 목사가 간절히 기도하자 그 장로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너무나 엄청난 기적에 사람들이 다 놀랐다. 그 후 사방에서 간증 초청이 쇄도해 무수히 간증 다니면서 유명한 간증 강사가 되었다.
   
  점점 A 목사는 염려가 되었다. “저렇게 자기를 높이는 모습은 좋은 모습이 아닌데.” 간증을 많이 하다 보면 스스로 높아지기 쉽고 듣는 사람에게는 기복주의를 부추겨 참된 구원의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결국 장로에게 말했다. “장로님! 간증을 많이 다니니까 염려가 됩니다.” 그때 목회자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면서 장로가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때부터 간증 집회 인도를 딱 끊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리 없이 신실하게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소리 없는 헌신을 즐기라. 간증이 많아지면서 간증이 자랑처럼 되지 않게 하라. 영성 자랑은 가장 조심하라. 그 원리를 배워 깨닫고 그 장로가 간증을 절제하면서 최고의 장로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를 통해 진짜 선한 영향력이 나타나 그의 멘토링을 받은 후임 장로도 하나같이 훌륭한 장로가 되었고 교회도 은혜와 평화가 넘치는 복된 교회가 되었다. 요새는 후임 목사에게도 그 장로가 변함없이 잘해서 후임 목사도 고마워하고 있다. 얼마나 멋진 인물 성도인가?
   
  간증이 인간적인 자랑과 기복주의를 낳으면 안 된다. A 목사의 기도 후에 치유되었다고 해서 그 목사를 찾아가 “목사님! 저도 기도해주세요.”라고 하며 마치 A 목사가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사람을 바라보면 그때부터 인생 추락의 길이 펼쳐진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에서는 결코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 치유와 기적을 선전하는 집회에 가지 말라. 사람을 높이는 곳에 가서 기도받으면 가장 기도응답이 없다. 혹시 기도응답이 있는 것 같아도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기에 다른 더 큰 진노를 초래할 뿐이다.
   
  사람이 높아지는 곳에서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 능력과 헌신은 자랑할 것이 아니다. 늘 겸손하기를 힘쓰라. 권위를 다 내던지라는 말은 아니다. 권위가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겸손할 수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심을 믿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겸손하고 멋진 성도가 되라. 그런 성도가 있는 곳에 선한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면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무질서가 질서로 바뀌고 헤게모니가 하모니로 바뀐다. 사람 앞에서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자랑스럽게 살아가라.
   
  < 나의 변화를 추구하라 >
   
  한 이단 교주는 자기가 안수한 물을 뿌리거나 마시면 쌍꺼풀이 생기고 탈모가 치료되며 죽어가던 생명이 살고 고장난 기계도 고쳐진다고 주장한다. 황당한 얘기다. 사기를 치면 법으로 처벌하듯이 명백한 종교사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빼앗으면 법으로 처벌해야 피해자 양산을 막을 수 있다. 요새 성추행 미투 운동은 사람들에게 많은 경각심을 주었다.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미투 운동이 종교사기 피해자의 미투 운동이다. 명백한 종교사기는 당국에 용기 있게 고발해서 이단 교주에 의한 추가 피해자의 양산을 막아야 한다.
   
  기독교는 기적적인 표적을 인정한다. 문제는 거짓된 표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실상 기독교의 표적은 초자연적인 기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때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그런 상황에서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표적을 보여주실 수도 있는데 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했는가? 표적은 사람이 구해서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암시다. 또한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는 말씀은 십자가를 염두에 둔 말씀으로서 사람이 생각하는 표적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표적은 다르다는 암시다. 표적을 신기한 기적으로만 오해하면 사탄과 교주에게 미혹되기 쉽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대 표적은 구원의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며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다.
   
  변화된 삶의 표적을 보이라. 살면서 가끔 문제를 만나도 걱정할 것이 없다. 믿음으로 잘 소화하면 문제는 축복의 기회가 된다. 문제를 통해 바로처럼 강퍅해지지 않고 모세처럼 온유해지면 오히려 더욱 큰 은혜를 입는다. 문제가 생길 때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나의 변화’다. 문제를 내가 변하는 계기로 삼으라. 하나님께서 문제를 다 해결해주시지 않는 이유는 ‘나의 문제 해결’보다 ‘나의 존재 변화’를 더 원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쉽지 않기에 누군가의 작은 변화라도 보면 기쁨이 넘치게 된다. 주일 낮 예배만 참석하다가 점점 참여와 헌신과 봉사의 영역을 넓혀 가면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큰 힘이 된다. 그런 변화들을 보면 너무 기뻐서 목회자 부부는 물론 성도들도 도란도란 그 얘기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얘기 중의 하나는 사람이 좋게 변화되는 얘기다.
   
  가끔 <온새기(온라인새벽기도)>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말씀을 통해 은혜받고 소리 없이 후원하는 성도가 있다. 어떤 후원자는 얼굴도 모른다. 그런 일은 깊은 은혜가 없다면 흔히 생기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은밀한 후원의 손길들이 있었기에 <월새기> 문서선교 사역이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런 후원의 손길을 대하면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그날에 어떤 말씀을 전했나? 그 주간에 어떤 말씀을 전했나?” 하고 홈페이지에 게시된 필자의 설교 말씀을 클릭해보거나 <월새기> 책을 열어보기도 한다.
   
  이번 <월새기 5월호>는 16,800권 발행한다. <월새기>는 작은 책이지만 곳곳에서 많은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 변화의 소식들이 <월새기> 사역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다. 누군가의 작은 변화는 사랑으로 지켜보는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순교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선하고 의미 있는 일에 조금 더 헌신하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면서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이다. 인생에 문제가 다가오는 이유도 무엇인가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때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변화를 원하시는구나.” 하고 그 문제를 받아들이라. 문제 속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돌아본 후에 십자가를 지고 새롭게 되려는 결단은 가장 위대한 문제 해결 비법이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 그 문제를 해결해주세요.”라는 기도만 하지 말고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라는 기도도 하라. 내가 나의 변화를 위해 애쓰는 만큼 우리의 상황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시고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이다.
   
  2018년 4월 16일 (월새기 영어판 D-503)
  이한규 (요삼일육선교회 대표/ 월간새벽기도 주필)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파일1 다운로드 파일2 등록된 파일 없음
번호 게시판 제목 작성자 조회수 등록일
10805 이달의 월새기 복과 은혜가 막히는 이유 (마가복음 6장 1-6절) 요삼일육선교회 17 2024.04.26
10804 온라인새벽기도 죄 사함의 확신을 얻는 길 (시편 51편 1-9절) 요삼일육선교회 19 2024.04.26
10803 담안편지 담안편지(900) - 여자, 도박이 없으면 손이 근질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삼일육선교회 10 2024.04.26
10802 온라인새벽기도 감사를 체질화시키는 길 (시편 50편 22-23절) 요삼일육선교회 40 2024.04.25
10801 이달의 월새기 기적을 만드는 믿음 (마가복음 5장 35-43절) 요삼일육선교회 29 2024.04.25
10800 온라인새벽기도 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된다 (시편 50편 22-23절) 요삼일육선교회 60 2024.04.24
10799 이달의 월새기 치유를 일으키는 요소 (마가복음 5장 21-34절) 요삼일육선교회 40 2024.04.24
10798 공지사항 (알림) 월간새벽기도 2024년 5월호 발행 요삼일육선교회 36 2024.04.23
10797 온라인새벽기도 복을 원하면 감사하라 (시편 50편 14-15절) 요삼일육선교회 67 2024.04.23
10796 이달의 월새기 예수님을 만나고 전파하라(2) (마가복음 5장 1-20절) 요삼일육선교회 49 2024.04.23
10795 주일설교 성도의 자랑거리 (예레미야 9장 17-26절) 요삼일육선교회 61 2024.04.22
10794 온라인새벽기도 성도의 자랑거리 (예레미야 9장 23-26절) 요삼일육선교회 77 2024.04.22
10793 이달의 월새기 예수님을 만나고 전파하라(1) (마가복음 5장 1-20절) 요삼일육선교회 70 2024.04.22
10792 이달의 월새기 삶의 광풍을 잠재우는 길 (마가복음 4장 35-41절) 요삼일육선교회 80 2024.04.20
10791 온라인새벽기도 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된다 (시편 50편 16-23절) 요삼일육선교회 88 2024.04.19
10790 이달의 월새기 복과 행복을 나누라 (마가복음 4장 30-34절) 요삼일육선교회 65 2024.04.19
10789 담안편지 담안편지(899) - 감사합니다 하나님! 요삼일육선교회 47 2024.04.19
10788 이달의 월새기 열매 맺는 믿음의 원리 (마가복음 4장 26-29절) 요삼일육선교회 102 2024.04.18
10787 온라인새벽기도 범사에 감사하라 (시편 50편 14-15절) 요삼일육선교회 114 2024.04.18
10786 온라인새벽기도 부자를 부러워하지 말라 (시편 49편 6-15절) 요삼일육선교회 136 2024.04.17
10785 이달의 월새기 영적인 부를 얻는 길 (마가복음 4장 21-25절) 요삼일육선교회 109 2024.04.17
10784 시/그림 〈월간새벽기도 24년 5월 16일자 본문〉 중에서 발췌 요삼일육선교회 70 2024.04.17
10783 선교소식 월간새벽기도 24년 5월호 선교소식 : <월간새벽기도> 기도 편지 요삼일육선교회 70 2024.04.17
10782 월새기 발간 모음 2024년 5월호 요삼일육선교회 64 2024.04.17
10781 이달의 월새기 네 종류의 마음 밭 (마가복음 4장 10-20절) 요삼일육선교회 122 2024.04.16
10780 온라인새벽기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시편 48편 8-14절) 요삼일육선교회 133 2024.04.16
10779 대표기도 주일예배 대표기도 (전정복집사) 요삼일육선교회 95 2024.04.15
10778 주일설교 십자가를 지는 삶의 복 (마가복음 10장 28-31절) 요삼일육선교회 537 2024.04.15
10777 온라인새벽기도 십자가를 지는 삶의 복 (마가복음 10장 28-31절) 요삼일육선교회 537 2024.04.15
10776 이달의 월새기 백 배의 복을 얻는 길(2) (마가복음 4장 1-9절) 요삼일육선교회 104 2024.04.15

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