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 (이사야 48장 1-11절)
< 하나님을 믿고 까불라 >
인생은 오르락내리락한다. 영혼도 마찬가지다. 힘들면 의기소침했다가 믿음이 커지고 성령충만해지면 다시 환해진다. 성령충만은 외형주의, 소비주의, 이기주의의 망령 등을 이겨내게 한다. 또한 새 방언을 말하게 한다. 방언이란 기도를 돕는 이상한 언어의 발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마음과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의 발설이란 의미도 내포한 것이다. 말의 언어보다 성령충만으로 생기는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언어가 더 중요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음이 커지고 성령충만할 때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막 16:18). 말귀도 못 알아듣고 성숙한 믿음이나 신학적인 지식도 없이 이단 교주가 충동하는 허영적인 믿음을 따라 독사를 잡고 독약을 마시면 안 된다. ‘성경말씀대로 믿는 것’과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은 전혀 다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은 믿음으로 어떤 시련과 장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으면 무서워할 것도 없고 주저할 것도 없다. 죽으면 다시 살기 때문이다.
어떤 유력한 정치인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 비교적 모범적이었다. 그런데 가끔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들이 놀렸다. “너 누굴 믿고 그렇게 까부니? 네 아버지 믿고 그래?” 성도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까부는 사람’이다. 겸손하면서도 때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담대하게 까불어야 인물이 된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까불어서 인물이 된 사람이 다윗이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이 말했을 것이다. “쟤가 누굴 믿고 저렇게 까불지?” 골리앗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애송아! 너 누굴 믿고 그렇게 까부니?” 그때 다윗이 이렇게 대답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리라(삼상 17:45-46).”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의 권세를 믿고 까불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힘써 높일 때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최대한 모욕받지 않게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주어진다.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은 온갖 시련과 장벽과 상처를 이기게 만들고 불의, 부정, 부조리, 불공평으로 인해 상심한 사람들을 일으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고 희망을 주게 한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2018.3.2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