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1) (이사야 45장 8-17절)
<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
본문은 은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묘사했다(8절).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 의문을 품는 것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왜 저를 만들었어요?”라고 따지는 것과 같고 자녀가 부모에게 “왜 저를 낳았나요?”라고 불평하는 것과 같기에 결국 화가 미친다(9-10절). 그러므로 장래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불평하거나 의문을 품지 말아야 한다(11절).
하나님은 땅과 사람을 창조했고 하늘조차 주관하고 하늘의 모든 군대조차 절대명령으로 다스리신다(12절). 그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이방 왕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을 재건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13절). 더 나아가 회복의 때에는 애굽과 구스와 스바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굴복하고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당신들과 함께하시는군요.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군요(14절).”
왜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속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가?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일을 행하실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진행시키신다. 그 사실을 깊이 깨닫고 이사야는 감격과 감탄과 감동 중에 고백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15절).”
하나님은 숨어서 일하시지만 천지만물과 지나온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 손길을 느끼며 자신의 왜소함을 깨달아야 비로소 복된 역사가 시작된다. 욥은 고통 중에 친구들과 논쟁하다가 나중에 천지만물을 예로 들며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때 자신의 유한성을 깊이 깨닫고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자기가 너무 많은 말을 했다고 회개했다(욥 42:3). 그때부터 극적인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사람은 고난에 처하면 고난의 이유를 알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고난의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시지 않는다. 대신 고난을 통해 사람의 유한성과 연약성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 유한성과 연약성을 깨닫고 “하나님! 저는 잘 몰라요. 모든 것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잘 하실 줄 믿습니다.” 하고 나아갈 때 위로와 평강도 넘치게 되고 그때부터 인생의 목적과 해답과 보람과 만족도 찾게 된다.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자기를 감추고 숨길 줄 알라. 숨어서 일하고 돕는 자세를 가질 때 인생의 만족과 보람이 커진다. 하나님은 숨어 계셔도 그 영광이 찬란하게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숨어서 일하면 언젠가는 성도에게도 반드시 영광의 때가 찾아온다. 성숙함이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고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처럼 ‘숨어서 넉넉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인생 문제를 너무 정확히 해석하려고 하지 말라. 문제와 고난에 대한 해석이 많아지면 인생이 복잡해지고 고난이 오히려 심화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감탄하며 하나님을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묘사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일이 이뤄진 것 같지 않고 시간만 낭비한 것 같고 오히려 고난과 역경과 문제만 더해진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물밑 작업을 통해 엄청난 일을 이루고 계신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감탄해 “하나님! 그때 그래서 그렇게 하셨군요.”라고 탄복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다 드러내고 일하시지 않는가? 고난과 역경과 문제가 있을 때도 하나님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사는가를 보시기 위해서다. 그 믿음의 시험에서 합격하면 조만간 하나님께서 물밑 작업을 통해 준비한 찬란한 축복을 드러내어 보여주실 것이다. <2018.3.20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