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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6-05-18
요한복음 106편 말씀 중에서 20번째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6편 전체 말씀은 "성경66권설교파일"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20)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 기독교는 주는 종교입니다 >
   
  일전에 다음과 같은 블랙유머가 담긴 만화가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프러포즈하는데 여자가 거절하며 말합니다. “우리는 종교가 달라서 안돼요. 저는 돈을 믿는데 당신은 빈털터리잖아요.” 이 여자의 모습은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암이나 에이즈가 아니라 물질주의입니다. 그러므로 물질과 소유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19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이 말씀에 대한 3가지 큰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 이 말씀은 돈이나 소유가 없어야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즉 “돈을 쌓아 두지 말라!”는 말은 “돈을 벌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이 영성의 지표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사실상 성경에 나오는 거룩한 인물들 중에 큰 부자들도 많았습니다. 욥,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사람들은 큰 부자였습니다.
   

  둘째, 이 말씀은 장래에 대한 계획이 필요 없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은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는 믿음 없는 행위가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좋은 선물들을 잘 관리해야 할 청지기들이기에 그 선물들을 현명하게 잘 사용하려는 계획성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이 말씀은 돈으로 즐기지도 말고 좋은 것을 취할 생각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누리는 삶은 죄가 아닙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고백합니다. 그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결국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는 말은 좋은 집에서 살지도 말고, 영화 보러 가지도 말고, 여가생활을 하지도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복과 물질을 추구하며 물질을 삶의 제일 중요한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물질을 좋은 데에 쓰지 않고 자기만 위해 쌓아 두고 쓰면 그 물질은 우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최고인 줄 아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고, 책은 살 수 있지만 지혜는 살 수 없고, 음식은 살 수 있지만 구미는 살 수 없고,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고,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고, 화려함은 살 수 있지만 성숙함은 살 수 없고, 쾌락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고, 종교는 살 수 있지만 구원은 살 수 없고, 외국은 갈 수 있지만 천국은 갈 수 없습니다.”
   
  돈을 우상으로 삼지 마십시오. 돈이 어디 쓰이도록 하는지를 보면 그가 어디에 관심이 있고, 그의 가치관이 무엇이고, 삶의 질과 사람됨은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이 중요합니다. 급변하는 세대 속에 살고 있지만 ‘예배하고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태도’는 삶을 안정시켜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는 물질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선언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
   
  기독교는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을 요구하는 차원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받는 종교라기보다는 주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간증도 “기적적으로 받았다!”는 간증보다 “기쁘게 주었다!”는 간증이 더 많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무엇을 사랑하고 기뻐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물질보다 영혼을 사랑하고, 받는 삶보다 주는 삶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주는 삶은 가장 주를 닮은 삶입니다.
   
  본문 16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으니까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처럼 사랑했다.”는 말씀은 “독생자를 주셨으니”란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사실상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도토리 씨앗을 땅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싹이 트게 하셨고 비와 햇빛을 주시며 그 나무가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썩은 나무를 살리려고 하나님이 독생자를 죽이셨다면 그것이 정상적인 머리로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죄에 빠진 사람을 살리려고 독생자를 주신 것도 정상적인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저의 매형이 진돗개를 좋아했습니다. 힘이 있고, 충성스럽고, 게다가 똑똑하니까 아주 반했습니다. 그 진돗개 이름이 '백구'였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매형에게 흰색 푸들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그 푸들 이름이 ‘린다’였습니다. 개를 좋아했던 매형은 실내에서 키우는 린다도 마당에서 키우는 백구만큼 사랑하며 키웠습니다.
   
  인천에서 목회할 때 매형 집에 자주 들렸기에 린다의 성장과정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많이 예뻐해 주었지만 나중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점차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자기를 끔찍하게 위해주는 매형에게 딱 달라붙어 안하무인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개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인데 저렇게 주인 믿고 까불면 언젠가는 다치지!”
   
  어느 날, 매형의 딸아이가 아프게 되었습니다.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며 딸을 위해서 시간을 더 내야 했고 가정환경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개털도 날라 다니지 말아야 했습니다. 결국 끔찍하게 예뻐해 주던 린다가 곧 그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린다가 큰 착각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예뻐해 주어도 사랑하는 자녀와 비교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개를 위해 사랑하는 딸을 희생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심으로 그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1986년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 많은 월급을 받고 감격하며 걱정했습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쓸까?” 보통 사람들은 월급을 저축하고 결혼준비를 하는데 저는 결혼은 그냥 하는 줄 알고 돈을 저축하지 않아서 1년 후 미국유학을 가려고 직장을 그만 두었을 때는 퇴직금밖에 남은 돈이 없었습니다. 술 담배도 안 하고, 옷도 사 입지 않고, 사치와 도박도 모르는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겠습니까? 교회에 드리고, 선교와 구제에 쓰고, 이웃을 대접하는데 썼습니다.
   
  결국 미국에 갈 때는 퇴직금으로 간신히 비행기표를 마련해서 갔고 신학교에 다닐 때도 돈이 없었지만 교회에서 파트타임 전도사로 사역하고 여러 일을 하면서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결혼할 때도 거의 돈이 없이 결혼했지만 그 후 결혼생활에서 하나님이 신기하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은 재산도 없어서 세상 기준으로는 가난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선교와 구제에 임하고 있습니다.
   
  드리고 나누고 베풀면서 살면 가난뱅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기하게 드리고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눔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기쁜 일들이 있지만 ‘내는 것’만큼 기쁨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나눔의 삶을 실천하려면 자신의 안전을 걸어야 하지만, 자신의 안전을 걸 때 하나님은 신기하게도 더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반드시 보여주셨습니다.
   
  내는 삶이 체질화하십시오. 식당에 가면 제일 안 내는 사람 1위가 목사이고, 2위가 교사이고, 3위가 법조인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항상 대접받는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대접만 받는 삶은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물론 식사 대접만 대접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여러 모양으로 대접하며 살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대접만 받는 삶은 결코 바람직한 삶이 아닙니다. 서로 힘껏 대접하십시오. 대접하는 기쁨을 다 빼앗긴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주는 기쁨, 내는 기쁨만큼 큰 기쁨은 없습니다. 그 기쁨을 결코 잃지 마십시오. 그 기쁨을 위해서 자신의 안전을 거십시오. 앞으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친척들과 친구들을 위해 항상 기쁘게 주려고 하십시오.
   
  제가 인터넷을 통해 문서선교를 꾸준히 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인터넷 말씀사역이 ‘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돈 이상의 귀한 것을 주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처럼 주는 삶을 위해 애써도 저의 소중한 두 딸만은 결코 줄 수 없습니다. 만약 두 딸이 죽게 될 때 내가 죽어서 두 딸이 살 수 있다면 기쁘게 대신 죽을 것입니다. 그처럼 아무리 잘 주려고 해도 두 딸만은 어떤 선한 일을 위해서라도 죽음에 내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이 얼마나 새롭게 부딪쳐 왔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려고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측량합니까?
   
  어떤 목사님 아들이 수술할 때 긴급히 피가 필요했습니다. 이 목사님이 헌혈을 자원하며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필요한 만큼 피를 뽑으세요. 저의 생명이 필요하면 가져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만은 꼭 살려주세요.” 그처럼 아들이 사는 일을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인데 어떻게 그 아들을 죽음의 길로 내주겠습니까? 그것을 생각해볼 때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정말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16년 전 성탄절 전날 아침 11시에 인천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난 첫 딸 은혜를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처럼 사랑하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2년 동안 개척교회를 해서 성도들도 다 소중했지만 그래도 성도들에 대해서는 “이처럼 사랑하사”란 정도의 사랑의 감정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첫 딸 은혜를 보고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깊이를 처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침대에서 자는 두 딸의 모습을 보면 “이처럼 사랑하사”로 표현된 그 사랑이 샘솟는 것 같습니다. 자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들뜨고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그 두 딸을 아무리 좋은 일을 위해서라지만 어떻게 죽음에 내주겠습니까? 사람들은 도저히 그렇게 못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살리려고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이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처럼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은 사랑의 싸인이고 키스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없이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는 것이 없이는 결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소중한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남아메리카 선교사 폴 브레이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애완동물을 돌보는 것과, 개와 고양이의 음식을 위해 쓰는 돈이 선교에 쓰는 돈보다 많다. 진정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세계 선교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세계 선교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헌신하십시오.
   
  지금 세계에서 복음을 접하지 못한 종족이 대략 1700종족이 있습니다. 1700종족이라고 하니까 적은 것 같은데 인구로 말하면 세계 전체 인구의 약 40%입니다. 20억 이상의 사람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 세계선교의 임무를 완성하려면 약 20만 명의 새로운 선교사가 필요하고, 현재보다 5배의 선교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더 드리는 삶을 실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25억 달러의 돈을 세계 선교에 드립니다. 반면에 매년 장난감을 사는데 190억 달러를 사용하고, 음료수를 마시는데 610억 달러를 사용하고, 패스트푸드를 먹는데 990억 달러를 사용합니다. 그 통계를 보면 드리는 삶이 너무 기근에 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가장 소중한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사랑을 아는 자라면 세계 선교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것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한 미국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버스에서 자리를 항상 양보해주었던 고등학생 누나를 사랑했습니다. 그 누나는 가끔 팔로 그를 안아주었는데 그때마다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그 느낌이 매우 좋았습니다.
   
  어느 날, 어린 마음에 그는 그 누나에게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사람이 누구를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어떻게 보여주나요?” 어머니는 사랑은 종종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타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웃을 위해 일을 해주고 1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1달러를 5센트짜리 동전 20개로 바꾸고 근처 상점에 있는 풍선껌 기계로 갔습니다.
   
  그 풍선껌 기계에는 예쁜 반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반지를 달라고 기도하고 동전 하나를 넣었습니다. 그러자 반지는 나오지 않고 풍선껌이 하나 나왔습니다. 풍선껌을 씹고 또 동전을 넣으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반지가 나오게 해주세요.” 그러나 역시 풍선껌만 나왔습니다. 그렇게 계속 나온 풍선껌을 씹느라고 입이 아팠고 점점 입 안이 풍선껌으로 가득 차서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슬퍼서 울음까지 나올 지경이었는데 하나님은 그의 애틋한 마음을 아시고 결국 19번째 동전을 넣었을 때 반짝이는 새 반지를 얻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그는 버스가 오는 것을 기다리다가 버스가 도착해서 문이 열렸을 때 바로 버스로 뛰어들어 항상 앉던 자리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반지를 그 누나의 손에 끼워주었습니다. 반지가 약간 작아서 끼우는데 힘들었지만 누나가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지를 똑똑히 배웠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재정적인 위기를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신기하게 누군가를 통해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고 믿음의 체험을 하게 합니다. 그때 저희 부부는 소리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그분들의 친절한 행동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그 사랑을 대하면 마음에는 새로움으로 가득 차고, 목회와 문서선교를 하면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또한 그때 물질을 이리 저리 돌게 하시면서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세히 누구나 그런 사랑을 받고 삽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을 받았다고 깨달으면 이제는 그 사랑을 되돌려주려고 하십시오. 진실한 사랑은 주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주는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는 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어느 누군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주는 삶을 실천하면 받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주는 삶’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가장 위대한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사랑은 주는 것이다!”란 사실을 열심히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격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교회도 찾아보면 줄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규모 면에서는 작은 교회도 나눔의 실천이라는 면에서는 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도와야 할 곳이 많습니다. 요새도 어려운 환경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기도제목을 담은 편지가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건강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어떤 선교사님은 차량을 위한 기도를 부탁합니다. 어려운 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기도제목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항상 누구를 위해서 돕는 손길을 자처하십시오. 주는 삶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삶이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가장 위대한 삶입니다. 항상 주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더욱 자신의 영혼을 사랑과 행복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널리 전하며 사는 복된 분들이 되십시오.<성경66권설교파일 중에서 요한복음 20번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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