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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사랑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2-05-03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절)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자유와 사랑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 자유종 >
 
   갈라디아서 6장은 2부로 나뉩니다. 전반부 1-4장은 교리편이고 후반부 5-6장은 실천편입니다. 교리편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강조한 후 실천편으로 들어와서 바울이 제일 먼저 권고한 것이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갈 5:1). 그 말은 믿음 안에서의 자유를 권고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면 안 되기에 바울은 이렇게 도전합니다(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조금 전에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가 곧 “종노릇 하라!”고 하니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합니까? 그러나 본문에서는 단순히 “종노릇 하라!”고 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했습니다. 자유를 누리는 삶 중에 가장 고귀한 삶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삶입니다. 주어진 자유를 잘 쓰지 못하면 그 자유는 더 이상 복된 자유가 아닙니다.
 
   러시아가 왜 공산주의가 되었습니까? 주어진 자유를 잘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는 무서운 독재정치를 펼쳤고 극도의 사치스런 삶을 위해 백성들의 피를 짜냈습니다. 그러다가 1917년 그 왕조가 무너졌습니다. 그때 자유를 얻은 러시아 국민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대안을 내야 했는데 대안을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다가 황제의 독재보다 더 무서운 공산주의 독재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었으면 그 자유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자유는 오히려 영혼과 사회를 급속히 망칠 수 있기에 주어진 자유로 인해 방종하는 삶이 생기지 않도록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누구의 종입니까? 바로 영원한 자유를 주신 주님의 종입니다.
 
  < 사랑을 앞세워 사십시오 >
 
   구약 출애굽기 21장 1-6절을 보면 이런 관습이 있습니다. 종이 주인을 위해 6년간 일한 후에 7년째가 되면 안식년이 되어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너무 고맙고 좋아서 자유를 포기하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재판장으로부터 공증을 받은 후에 그 종을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다가 송곳으로 종의 귀를 뚫습니다. 그러면 그날부터 그 종은 주인의 영원한 종이 되고 주인도 그 종을 예전의 종처럼 부리지 않고 마치 자기 아들처럼 대합니다. 이런 종을 자유종이라고 합니다.
 
   부부는 어떤 의미에서 서로에게 자유종입니다. 사랑하기에 서로를 섬긴다면 서로에게 주어진 멍에는 무겁지 않습니다. 그처럼 서로 종노릇하며 섬겨주면 그 인간관계가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답게 되겠습니까?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이유는 교제의 근본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서로 종노릇하지 않고 서로 주인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종노릇하지 않고 지나치게 경쟁하면 결국 다 망합니다(14-15절).
 
   이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십시오. 인생을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종노릇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공존하는 존재이자 동역하는 존재입니다. 공존이 삶의 기초라면 동역은 삶의 기둥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공존을 위해서는 법이 꼭 준수되어야 하지만 고차원적인 동역을 위해서는 법 이상의 것인 도덕과 양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법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파란불이 켜져 있으면 법적으로는 차가 달려도 되지만 앞에 노인이나 어린이와 환자가 걷고 있으면 차는 멈추어야 합니다. 로봇이라면 그냥 달릴 것입니다. 그처럼 제한성을 무시한 법은 독재와 폭정을 낳습니다. 그처럼 율법은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율법에 의지하면 오히려 그 율법은 인간을 희생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원칙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유를 맘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맘대로 사는 것은 진짜 자유가 아닙니다. 진짜 자유는 법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자유를 반납하고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상대를 존중합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도 될 수 있고 ‘무관심’도 될 수 있지만 정말 사랑의 가장 반대되는 개념은 ‘질서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질서 안에 있을 때 그 빛을 발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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