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라
3.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경계가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에서는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창 15:18)’로 간단히 묘사되지만 본문에서는 각 성읍의 이름까지 세세히 언급되었다. 그처럼 하나님의 본질적인 약속은 같아도 계시의 내용은 점차 발전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은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내적인 가치는 동등하지만 신약은 구약보다 더 발전적이고 구체적으로 계시된 말씀이다.
성경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인 법으로써 본질적인 면에서 그 바탕이 같다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말씀에 대한 해석이나 적용이 점진적으로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므로 성경 자구 하나하나에 매달려 남을 얽매는 율법주의나 교조주의를 삼가라. 특별한 상황에서만 적용될 말씀으로 남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영성을 자랑하면 마치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정죄한 세 친구처럼 비정해진다.
욥의 친구들이 처음에는 같이 아파하며 침묵하면서 위로했다가 설교하면서 오히려 욥의 마음에 큰 상처만 남겼다. 그처럼 고난당하는 자 앞에서 함부로 설교하지 말라.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을 통해 흘러나와야 하고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영혼의 호흡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귀한 교훈도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없으면 의미 없는 문자의 나열로 끝날 수 있다. 깊은 영혼의 위로를 들려줄 지혜와 능력이 없으면 관습적인 어투의 신앙적인 충고를 그치고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쉽게 충고하고 설교하기에 인간관계는 더 얽히고 그 과정에서 고난당하는 자들은 더 고난당한다. 결국 욥의 고난이 주는 깊은 메시지는 인간의 연약성과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깨달음이 고난을 극복하게 하고 정죄로 무너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그처럼 인생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위대성을 깨달아서 순탄할 때는 겸손하고 어려울 때는 용기를 내라. <22.8.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