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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행 3: 1-10)."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고 하자 걸인은 무엇을 얻을까 하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5절). 그때 베드로가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6절).” 그리고 걸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멀리하는 걸인의 손까지 잡아준 것은 사랑과 긍휼을 전하면서 동시에 선포한 말씀대로 될 것이란 확신 가운데 걸인의 믿음을 불러일으키려는 행위 메시지였다.
베드로의 그런 언행은 대단한 변화였다. 처음에 그는 은과 금과 세상 권세를 얻으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 같으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달아났다. 그런 그가 오순절 날에 성령을 받고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게 되었다. 성령충만이란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은과 금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은과 금으로 ‘편안’은 살 수 있어도 ‘평안’은 살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은 참된 평안을 주고 기적과 기도응답의 원천이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면서 가장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질 때 기도응답과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다. 초대 교회의 형성 과정을 기록한 사도행전 3-4장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곳곳에 강조되어 있다. 이름에는 권위와 능력이 따른다. 높은 사람의 이름을 대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린다. 베드로는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확신했기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라고 했다.
그때 걸인이 일어나지 못하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러면 전도의 문도 막히고 믿음 약한 교인들은 떠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어났다. 기적은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곳에서 믿음을 통해 생겨난다. 요즘은 은금이 넘쳐도 “일어나 걸으라.”는 능력은 오히려 사라진 시대다. 언뜻 보면 믿음의 말과 고백이 곳곳에 넘치는 것 같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가르침에 의해 유도된 믿음의 말과 고백은 넘쳐도 진짜 믿음의 말과 고백은 오히려 사라진 것이 문제다.
20세기부터 치유기도를 할 때 베드로처럼 기도하는 것이 유행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마야 썩 물러가라.” 그런 선포로 인해 이단 교주의 거짓 기적과 기적 선전과 그로 인한 기복적인 교인만 늘어나지 실제 기적은 오히려 잘 일어나지 않는다. 참된 믿음과 긍휼도 없이 습관적으로 베드로의 치유 선포만 모방하지 말라. 베드로는 치유 능력을 과시하려고 습관적으로나 모방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지 않았다. 학자에게는 논문 표절이 가장 나쁜 것이지만 성도에게는 신앙 모방이 가장 나쁜 것이다. - <월간새벽기도> 20년 1월호 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