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6장 14-30절
친구에게 필요한 마음(2) (욥기 6장 14-30절)
욥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친구들의 이해를 원했기에 그런 이해가 없는 친구들에 대해 실망도 하고 강한 자기변호도 하고 비꼬는 말도 하다가 결국 자신이 잘났다는 말까지 했다. 본문 24절을 보라.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쉽게 말하면 “도대체 내 잘못이 무엇이냐? 잘 깨닫게 해 주면 잠잠하겠다.”라는 말이다. 비록 감정이 격앙되어 침착함을 잃고 한 말이지만 그의 감정적인 말에는 추악한 자기 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짙게 배어 있다.
감정적인 말이 오가면 논쟁은 커지고 관계가 멀어지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 감정적으로 자기변호를 할수록 남의 마음은 더 닫히고 더 설득력을 잃고 더 나만 비참해지고 더 나의 상처만 도진다. 자기변호는 자기변화의 최대 걸림돌이다. 특히 감정적인 자기변호는 자기 의에 사로잡히게 만들기에 감정이 격해진 욥도 엘리바스의 말이 알맹이 없는 허무한 말이라고 비꼬듯이 말했다(25-26절). 더 나아가 욥은 친구들의 정죄가 아주 악한 일 중 하나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본문 27절을 보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넘기는구나.” 고아나 친구를 팔아넘기는 악한 행위처럼 친구들이 별로 죄도 없는 자신에게 무자비한 말로 상처를 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처럼 바른말만 잘하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없는 친구들을 향해 또 다시 자기 의를 내세워 말했다.
본문 28-30절을 보라.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이 말도 자기 의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가 내포된 말이다. 그런 말들을 보면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용한 이유를 대략 짐작하게 된다. 욥은 더 배워야 했고 더 성장해야 했다.
왜 욥이 상처를 토로하다 자기 의를 자랑하는가? 친구들로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친구들의 이해심을 억지로 구하려고 몸부림을 친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이해심이 넘쳐야 하지만 이해심도 주려고만 해야지 받으려고 안달하면 안 된다. 친구라면 사랑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사랑과 이해를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라. 사랑과 이해를 바라는 것은 물질을 바라는 것만큼 나쁜 태도가 될 수 있다. <26.7.1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