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협주의
1. 타협주의
왜 아합이 벤하닷을 살려 주었는가? 아람의 보복이 두려워 살려 주었을 수도 있고 이전에 빼앗긴 성읍들을 돌려받고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에 이스라엘 무역상을 위한 아합 거리 조성을 약속받아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살려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핵심 이유는 이방신과 이방의 가치관을 쉽게 용납한 그의 타협주의 때문이었다.
타협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무조건 용납하며 타협하는 타협주의가 나쁜 것이다. 불의한 사람은 용납하고 용서해도 불의 자체는 멀리하라. 섣불리 타협하면 의와 사랑을 잃는다. 용기를 내어 불의의 가면을 벗기는 데 앞장서라. 다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롭게 행동한다면서 무조건 싸우지는 말라.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타협해야 한다면 그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라.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을 때려잡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불쌍히 여기라.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의 역사를 이루려고 악역을 맡은 사람을 하나님이 잠시 이 땅에 두신 것을 생각하면 악인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할 수 있다.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을 바른길로 이끌겠다면서 불의하고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는 말라.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신을 잘 다스리면서 잘못된 사람을 바르게 이끌려는 타협 정신은 갖추되 잘못된 것과 짝하는 타협주의는 힘써 버리라. 요즘 성도의 가장 큰 문제는 편리하게 신식으로 믿는 법과 타협하는 태도다.
마귀는 교회에 나가도 좋다며 풀어 주는 듯한 유화 정책을 쓰면서 자신이 붙들고 있는 마지막 영혼의 고삐는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럴수록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드릴 것은 드리고 나눌 것은 나누고 더욱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라. 하나님의 뜻을 고수하면서도 극단에 치우치지 말라. 다만 상대를 용납하면서도 타협주의에 빠지지 말고 지혜롭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 <23.12.6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