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장 1-3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라 (누가복음 8장 1-3절)
<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라 >
본문에는 두 번이나 ‘함께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했고(1절) 여자들이 주님과 함께했다(3절). 하나님의 일은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 어떤 사람은 혼자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홀로 된 불꽃은 아무리 위대해도 곧 꺼진다. 하나님과 좋을 때도 함께하고 힘들 때도 함께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떠나시지 않기에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고통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으면 조만간 축복의 문이 열린다.
예수님이 친구 되심을 믿고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하라. 제자들과 가룟 유다의 결정적인 차이는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했느냐의 차이다. 인간적으로는 가룟 유다가 훨씬 똑똑했지만 대신 끝까지 함께하는 태도가 없었다. 그는 자기 뜻대로 예수님이 움직여 주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움직여 주지 않자 배반했다. 똑똑한 사람이 빠르게 가려다가 멸망과 불행으로 갈 때가 많다.
공동체에서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함께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특히 좋을 때보다 힘들 때 얼마나 함께한 시간이 많으냐가 중요하다.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연륜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인내의 기간을 통해 고난에도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라.
사람은 최소한 3년은 같이 있어 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고난의 세월을 앞서 맞았던 사람을 존중하라. 그들이 능력이 부족하고 컴퓨터를 잘 모르고 화려한 은사가 없다고 해서 “저리 비키세요.”라고 하지 말라. 사람의 믿음과 성품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끝까지 함께하는 자세다.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이 참된 제자다.
< 적극적으로 함께 참여하라 >
본문에서 ‘함께했다’는 것은 ‘함께 참여했다’는 뜻도 있다. 사랑은 자기를 드려 사랑하는 대상이 가는 길에 힘써 참여하는 것이다. 몸은 함께하면서도 뱀처럼 웅크리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그가 어떻게 하나? 내게 어떻게 해 줄 것인가?”에 대해 계산하면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교회 생활에서도 “목사님이 이번에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라고 하지 말라. 나의 상황에 초점을 맞춰 남의 사랑을 시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속으로 “목사님이 이번에 돌 예배드려 주나 두고 보자.”라고 한다. 그러다가 아무런 얘기가 없으면 “성도를 잘 살피지 않는다. 사랑과 관심이 없다. 목사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라고 하면서 마음이 돌아선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여유도 가지라.
돌 예배를 원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회자에게 “이번에 아이 돌인데 예배를 인도해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겸손하게 요청하면 된다. 그런 경우에 거절당해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라고 해야 하는데 “이번 아이 돌 때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라고 하면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남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다. “두고 보자.”라고 하는 신앙 스타일보다는 “해 보자.”라고 하는 신앙 스타일을 가지라.
큰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심방과 부목사의 심방을 다르게 여기고 “우리 집에 담임목사님이 오나 두고 보자.”라고 잔뜩 시험 들려고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담임목사의 심방을 원하면 이렇게 말하라. “목사님! 이번에 바쁘시더라도 예배를 인도해 주실 수 있나요?” 항상 “어디 두고 보자.”라고 하지 말고 “한번 말해 보자.”라고 하라. 어디서든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좋은 일에 함께 참여하려고 해야 복된 삶이 펼쳐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