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 21-24절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능력을 과시하지 말라 (누가복음 4장 21-24절)
< 편견에 매몰되지 말라 >
힘든 상황을 잘 이겨 내고 사명의 길을 잘 가려면 편견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당시 나사렛 회당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고 놀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말씀은 은혜롭게 들었지만 그 말씀을 전한 사람이 요셉의 아들임을 알고 경탄하기보다 무시하는 감정을 가지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가문에 대한 편견이 진리를 놓치게 한 것이다.
편견을 통해 남을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리면 언젠가는 나도 낭떠러지 상황에 처한다. 편견의 가해자는 조만간 편견의 피해자가 된다. 그런 피해가 없게 하려면 편견을 버리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소외된 지역이 복음화 비율이 높은 편이다. 교회가 소외된 자와 함께한다는 반증이다. 소외된 사람과 함께해 주고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일으켜 세워 주라.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
편견의 가해자도 되지 말고 반대로 편견의 피해자로서 너무 신음하며 지내지도 말라. 남의 부정적인 말과 시선에 너무 분노하지 말라. 분노할 대상은 세상 사람보다 세상의 불의다. 인종 차별, 지역 차별, 성차별 등의 세상 불의에 용기 있게 대응하되 차별적인 사람의 비정상적인 개인 언행으로 마음이 상하지 말라. 영적인 성숙은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는 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지만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잠 12:16). 동쪽에서 뺨을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하지 않는 지혜와 인격을 갖추라. 상처의 연쇄 고리가 나로부터 끊기도록 나 한 사람이라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보여 주라. 자녀 교육이나 목회에서 최대의 성공 요소 중 하나가 문제 앞에서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변인도 서서히 안정을 찾고 점차 힘든 상황도 극복하게 된다.
< 능력을 과시하지 말라 >
예수님 당시에 이런 속담이 있었다. “의사야! 남을 고치기 전에 너부터 고쳐라(23절).”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 속담을 인용해 예수님에게 “가버나움에서 능력을 행하기 전에 네 고향에서 먼저 능력을 행해 보라.”라고 시험하며 비꼬듯이 말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처럼 사람들은 남의 권위를 인정하기 위해 “네 능력을 보여 주라.”라고 요구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필요할 때 주어지는 것이지 남에게 보이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시선을 끌려고 능력을 행하거나 과시하지 않으셨다. 기적과 능력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거짓 목자와 이단에 미혹되지 않는다. 초대 교회 때 교회에는 성경 외에 외경과 위경이란 경전이 있었다. 위경은 위작으로 판명되었기에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외경은 꽤 권위를 가진 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외경조차 성경과는 그 권위가 비교될 수 없다.
어떤 외경에서는 동굴에서 뱀이 나와 가족을 위협하자 엄마 무릎 위에 앉은 예수님이 깡충 뛰어나가 뱀을 내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예수님이 어렸을 때 30일 걷는 거리를 하루에 걸었고 아기 예수님이 피난길에 애굽에 도착하자 355개의 우상이 땅바닥에 엎드려 지나가는 예수님께 절했다는 기록도 있다. 더 나아가 어린 예수님이 열두 마리 참새를 진흙으로 빚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훅 불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예수님이 행하셨다는 신비한 기적들을 내세우면 예수님이 더 훌륭하고 위대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들은 가나 혼인 잔치 기적이 예수님의 첫 기적이란 말씀에 의거해 모두 위작임을 알 수 있다. 신기하고 기적적인 것보다 진실한 것이 더 좋다. 진실한 삶이 참된 기적의 원천이다. 능력을 과시하는 삶은 벼랑 위를 걷는 삶처럼 위태하다. 기적을 너무 좋아하면 결국 벼랑 앞에 서지만 말씀을 앞세우고 나아가면 참된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