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5장 14-16절
14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나 누구든지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너희가 하는 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 15 회중 곧 너희에게나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율례이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가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16 너희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나 같은 법도, 같은 규례이니라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라 (민수기 15장 14-16절)
<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라 >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했지만 왕이 된 후 교만해져서 다윗을 질투해 죽이려 했고 마침내 블레셋과의 길보아 산 전투에서 패해 스스로 칼 위에 엎드러져 죽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일반인보다 더 못한 삶을 산 셈이었다. 신실했던 솔로몬 왕이 나중에 호색과 우상숭배에 빠져 왕국 분열의 씨를 뿌린 것은 참된 예배를 잃었기 때문이다. 참된 예배를 회복하고 참된 예배자로 살려면 예배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 후 보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지 않은 그들에게 광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다. 그 명령을 백성들이 듣지 않고 자기들 맘대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갔다가 그 거민들에 의해 패퇴했다. 그때 하나님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임을 알려 주시려고 모세에게 제사와 관련된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예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라는 암시다.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예배를 등한시한다. 참된 예배는 힘들 때보다 편할 때 더 약화된다. 잘될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라. 욥은 형통할 때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의로운 부자로서 자녀에게 믿음과 예배의 좋은 모델이 되었다. 그는 신실했지만 잔치를 금하지는 않았다. 다만 잔치 후에는 하나님을 혹시 욕되게 했을까를 염려해서 자녀를 위해 번제를 드렸다. 그의 삶은 예배가 생활화된 삶이었다.
욥처럼 잘나갈 때도 예배하는 삶이 후퇴되지 않게 하라. 형통할 때 콧노래만 부르지 말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예배에 대한 간절함을 잃지 않아야 행복이 따라온다. 왜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일천 번제를 드리며 신실함을 보였는가? 자기 능력으로는 왕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나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의 재능과 기회를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다.
< 예배 형식도 중시하라 >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지내는 타국인이나 오래 거주하면서 동화된 자들도 화제를 드릴 때에는 똑같은 율례대로 제사하라고 했다(14절). 즉 제사를 드릴 때는 제사법과 제사 관습대로 하라는 뜻이고 신약적인 의미로는 예배 형식도 중시하라는 뜻이다. 형식주의를 버리라는 말은 형식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형식에 너무 매이지 말라는 말이다. 형식에 너무 매이면 참된 능력을 잃는다.
중세 교회 때 성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로 인해 성찬식 후 남은 떡과 포도주를 버리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 두었다. 그때 창고에 들어가 떡을 먹은 쥐가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논쟁과 세례에 사용한 물에 빠져 죽은 파리가 성화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을 했다. 그런 형식주의에 빠지면서 중세 교회는 점차 부패해졌다. 북미와 남미의 기독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북미에서는 예배를 생활화했고 남미에서는 예배를 의식화했다.
예배 의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 의식과 형식 중심의 예배보다 생활과 내용 중심의 예배를 앞세우라. 다만 의식과 형식도 경시하지는 말라. 내용을 중시한다면서 의식과 형식을 무조건 배척하면 주관적인 견해와 감정으로 믿음의 본질까지 흔들리거나 변질된다. 형식이 내용을 질식시키지 않는다면 적절하고 마땅한 형식은 존중하라. 신앙도 중요하지만 신앙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체계화시킨 신학이란 틀도 있어야 신앙이란 내용이 오래 보존된다.
타국인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길 원하면 율법을 지켜야 했다. 그렇게 지키면 이스라엘 사람이 누리는 권리와 혜택이 똑같이 주어졌다. 그처럼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성도의 책무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예수님 안에서 어떤 차별, 배타, 편견도 없어야 한다. 내게도 편견적이고 배타적인 본능이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예수님 안에서 그 본능을 잘 극복해서 하나됨을 이룰 때 나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