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장 11-16절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하라 (민수기 14장 11-16절)
<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
10명의 정탐꾼이 전하는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 통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 기세에 눌려 모세와 아론이 온 회중 앞에서 엎드렸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들의 옷을 찢으며 말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고 그 땅을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입니다.” 그래도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고 하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났다.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했지만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전염병의 창궐로 고통을 받아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말라. 그 고통은 이전보다 더 크고 강하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가나안 정복을 포기하자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복할 수 있다고 했다. 축복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다. 인간 상황은 크게 보면 큰 차이가 없다.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달라진다. 즉 보는 시각과 믿음이 삶을 변화시키고 축복의 우선권을 뒤바꾼다. 기도 응답도 믿음에 의해 달라진다.
하나님을 잘 믿어도 상황이 더 나빠지면 이런 불평이 나온다. “왜 하나님은 이처럼 상황을 어렵게 만드실까?” 나중에 보면 그것은 더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숫자적인 후퇴에도 낙심하지 말라. 숫자와 양보다 내용과 질이 중요하다. 많은 돌보다 하나의 보석이 더 가치 있다. 실력보다 심력이 중요하고 심력보다 신력이 중요하다. 삶에 위기가 닥쳐도 위기를 기도하는 기회로 삼으라.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인생 전쟁도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결국 승리한다.
<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하라 >
모세는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출애굽 하게 하시고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을 이방인들도 들었다고 고백했다(13-14절). 그러면서 주께서 이 백성을 다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할 것이라고 했다(15-16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으면 하나님의 명성도 깎일 것이라는 호소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관심을 두고 기도했다.
내가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이 나를 높여 주신다. 나를 높여 주시는 은혜는 명예나 신분을 높여 주시는 것으로도 나타나지만 참된 자유를 주시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출애굽 했다고 자유인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야 참된 자유인이다. 자유를 잘 쓰지 못하면 참된 자유인이 아니다. 돈은 원하는 것을 얻게도 하지만 잘 쓰지 못하면 오히려 불행해진다. 불행을 낳는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를 방황했는가? 원망과 불신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유는 얻었지만 참된 자유인은 되지 못했다. 원망은 주체 의식과 정체성을 잃게 해서 참된 자유를 박탈한다. 나의 가난과 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 주체 의식을 잃으면 자유인이 아니다. 자유를 위한 대가를 치를 줄 모르거나 자유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외면해도 참된 자유인이 아니다.
나만 생각하는 무책임한 존재는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틀을 깨뜨리는 것을 자유로 여기다가 고난을 겪으면 점차 자유를 두려워한다. 무신론적 인본주의가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쳐서 얻는 것은 더욱 무서운 억압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참된 자유가 펼쳐지고 하나님을 높일 때 대 자유를 얻는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을 높이면 기도 응답을 통해 대 자유를 만끽하는 은혜가 주어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