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38-45절
38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성도가 추구해야 할 3가지 (마태복음 12장 38-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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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이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뜻한다(40절). 즉 예수님이 보여 주실 표적은 신비한 표적이 아닌 십자가의 표적이란 암시다. 신비한 기적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추구하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나를 감추고 인간적인 욕심을 극복할 때 참된 자유를 얻는다. 결국 최고의 승리는 십자가를 회피하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다.
무슬림은 성스러운 전쟁을 뜻하는 지하드를 중시한다. 문제는 지하드를 거짓과 음모와 테러와 폭력을 내세워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무슬림들조차 싫어해서 지하드 교리에 대한 견해 차이로 무슬림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한다. 중세 유럽의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도 성스러운 전쟁이란 이름하에 행해졌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전(聖戰)은 십자가를 지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 원래의 뜻인데 미움과 혐오와 편견을 조장하고 거짓과 폭력과 전쟁을 선동하는 이단 교주에게 넘어가 성전을 수행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십자가를 지고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라. 욕심과 이기심을 이기고 미움과 편견과 혐오의 낌새조차 내 삶에 틈타지 않게 하라. 성전은 전쟁터보다 먼저 나의 일상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유교에서도 자신을 죽이고 인자를 이루라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내세우는데 성도는 더욱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야 한다. 십자가를 져야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고 자기 극복과 비전 성취와 최종 승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2. 예수님의 존재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추구하는 것에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 이 세상에 예수님보다 크신 분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서로를 정죄하면서 세상이 삭막해진다. 그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말씀 전파와 순종을 통한 회개다. 요나 때는 요나가 말씀 전도사 역할을 했고 솔로몬 때는 솔로몬이 말씀 전도사 역할을 했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요나나 솔로몬보다 더 크다고 하셨다(41-42절). 예수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라는 말씀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은 평생을 추구할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이다. 좋은 배우자나 동료나 리더나 팔로워를 만나는 것도 복이지만 가장 큰 복은 예수님을 일심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그 일에 삼 년만 미친듯이 매달리면 정상에 오른다는 말이 있다. 물론 안식도 없이 일에만 매달리다 가족과 친구와 건강과 행복을 잃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니다. 그런 부작용 없이 복되게 살려면 더욱 예수님을 추구하라. 가끔 생기는 문제와 시련은 더욱 예수님을 추구하라는 환경 메시지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일심으로 추구하면 얼마든지 복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집중력도 있지만 더욱 있는 것이 집념이다. 집념을 품고 일심으로 예수님을 추구하라. 배우들은 몇십 분의 연기도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추구할 때 만남의 복과 기회의 복과 영력의 복이 주어질 것이다.
3. 성령 충만
본문 앞에서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신 것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셨다. 그 차이를 어떻게 아는가?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이 완전히 사라지지만 축귀자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얼마 후에 더 많고 악한 일곱 귀신이 들어와 전보다 형편이 더 나빠진다고 하셨다(43-45절).
귀신을 축출한다고 선전하는 축귀자를 추구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추구하라.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 감정 충만이나 열정 충만이 아니다. 축귀자 앞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도 아니다. 축귀자 앞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성령 충만을 거창하게 받은 모습을 했다가 곧 일어나 옷을 툭툭 털고 집회 장소를 떠난 후 일상에서 여전히 미움과 상처와 실망과 좌절에 빠진 모습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성령 충만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깊은 평안이다. 그런 평안을 소유하면서 소리가 없어도 영혼의 강자로 사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그런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으면 고마웠던 일, 즐거웠던 일, 아름다웠던 일을 오래 기억하고 겸손과 격려와 배려와 대접을 삶의 틀로 삼는다. 더 나아가 “죽으면 죽으리라! 잃으면 잃으리라!”라는 믿음으로 살기에 사는 모습도 아름답고 심지어는 죽는 모습도 아름답다. 문제 앞에서 너무 실망하지 말고 성령 충만으로 자신을 잘 죽이면 오히려 더욱 잘 사는 역사가 나타나고 평안도 넘치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