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장 22-26절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민수기 6장 22-26절)
< 하나님이 주시는 복 >
본문에는 제사장의 축도가 나온다. 당시 축도 권한은 대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만 있었다(23절). 본문 24-26절의 축도를 보면 세 구절이 모두 ‘여호와는’이란 단어로 시작된다. 복의 원천은 여호와 하나님이란 뜻이다. 어떤 주석가는 본문에 세 번 언급된 ‘여호와는’이란 표현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암시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참된 복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것이다(24절). 하나님은 모든 복의 원천이고 모든 악으로부터 지켜 주신다. 사람을 사람이나 돈이 지켜 줄 수 없고 하나님만이 온전히 지켜 주실 수 있다. 다만 하나님의 지켜 주시는 은혜를 입기 위해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사람 앞에 무릎 꿇고 비굴하게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
둘째,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것이다(25절). 여호와의 얼굴이란 표현은 하나님을 생생하게 표현한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표현이다. 하나님이 얼굴을 감추시는 것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고 하나님이 얼굴을 비추시는 것은 가장 소망적인 상황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불꽃놀이에 감탄하지만 그 감탄은 금방 사라진다. 하나님의 얼굴빛에 감탄하라. 그 빛은 금방 스러지지 않고 오래 여운을 남기며 매 순간 영혼을 새로운 은혜에 잠기게 만든다.
셋째, 하나님이 평강 주시는 것이다(26절).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셨다’는 것은 그 얼굴을 ‘네게 비추셨다’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의사와 행동을 나타내는 묘사로서 하나님의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외적인 평화와 내적인 평강의 최대 원천이다. 결론적으로 참된 복은 보호해 주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 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았어도 매일 예수님과 깊은 만남을 누리며 살라. 왜 기도하는가?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서다. 교회는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한 미팅 장소와 같다. 교회에 올 때 어떤 것을 얻으려는 계산적인 목적으로 오지 말라.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다. 전기의 음극과 양극이 만나면 스파크가 일듯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참된 복의 역사가 나타난다.
많은 좋은 일이 만남의 복에서 비롯된다. 귀한 만남이 귀한 인생을 만들고 좋은 만남이 좋은 인생을 만든다. 살다 보면 지치고 쓰러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 나의 빈 잔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 풍성한 은혜를 원하면 예배와 기도 자리를 중시하라. 주일에만 예배드리던 사람이 주중에도 매일 삶으로 예배드리면 더욱 은혜가 넘치게 된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은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가? 첫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너그러워진다. 둘째, 나를 바로 보면서 왕자병이나 공주병에 걸리지 않고 남에 대해 냉소하지 않는다. 셋째, 나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서 남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넷째,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며 그 후에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지 않는다.
많은 후회가 실수하고 실패한 삶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삶에서 생긴다. 결과에 대한 염려를 버리고 자신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면서 점차 즐겁게 사는 것이 삶의 틀이 된다. 복을 부르는 기쁨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주어진다. 선한 변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처럼 복된 일은 없다. 복된 변화를 원하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추구하라. 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