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1-3절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예수님의 손길이 되라 (로마서 9장 1-3절)
< 구령의 열정을 가지라 >
2가지 고난이 있다. ‘수동적으로 당하는 고난’과 ‘자발적으로 청하는 고난’이다. 수동적으로 당하는 고난을 통해서는 비참함과 슬픔을 맛보지만 자발적으로 청하는 고난을 통해서는 만족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고난을 자청한 무명의 헌신자들과 스스로를 매장한 무명의 사명자들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다.
태초에 인간에게는 죄로 말미암아 수동적으로 당하는 고난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 고난을 극복하는 길이 생겼다. 그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고로 포장하신 길이었다. 그 길을 통해 구원과 기쁨과 평안을 얻었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수동적으로 당하는 고난’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자발적으로 청하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라. 그래서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를 위해 힘쓰라.
거룩한 씨 하나를 심으면 거둘 때는 단으로 거두는 역사가 있게 된다.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 한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다. 그 베드로가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다. 그처럼 한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잊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힘써 전도하라. 내가 전도한 한 사람을 통해 어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은 지금도 영혼을 향한 불타는 야망을 가진 신실한 인물을 찾고 계신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의 사명에 나서라. 말을 잘 못하면 사랑의 터치로 힘든 영혼의 등을 두들겨 주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면 된다. 전도는 화려한 말이나 좋은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전도하면 어디선가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다.
< 예수님의 손길이 되라 >
요새 사람들의 표정이 대개 어둡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혼란하고 경제는 어렵고 취직률은 낮아지고 있다. 뉴스를 보면 비관적인 내용이 많아서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는 나라 같다. 사회가 어둠의 세력에 조종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와 성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사도 바울처럼 근심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악이나 악마를 만들지 않으셨는데 왜 세상에 악과 악마가 많은가? 사실 세상의 악과 악마를 만드는 존재는 사람이다. 악마는 내면의 교만과 미움과 죄가 형상화되어 나타날 때가 많다. 결국 악마를 키우는 존재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다. 결국 “내 탓입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철저한 회개만이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살릴 수 있다.
어거스틴은 변화된 후 세상에 존재하는 악한 현실로 인해 오랫동안 번민했다. 그는 생각했다.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만드시지는 않았을 텐데 왜 악이 이리 많을까?'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악이란 선의 결핍이다!' 자신이 빛을 비추며 살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사회의 어둠을 볼 때마다 자신이 진정 세상의 희망이 되고 있는가에 대한 자책과 안타까움과 근심이 있어야 한다.
구령의 열정과 세계선교의 열정을 가지라. 세상이 어둡다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만이라도 새롭게 일어서라.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금방 밝아진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아침이 되면 어둠은 사라진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내 안에 빛이 없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사랑과 용서와 이해의 빛이 필요하다. 그 빛이 나로부터 나갈 수 있도록 하고 내가 속한 처소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예수님의 손길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