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9-12절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1)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을 붙잡으라 (로마서 3장 9-12절)
< 죄인임을 인정하라 >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인이라고 선언했다(9절). 사람 눈에는 착하게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인이다. 요즘 교인들은 죄 얘기나 지옥 얘기를 잘 듣지 않으려고 하고 긍정적인 얘기, 믿으면 된다는 얘기,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는 얘기, 그리고 힘써 헌신하면 복 받는다는 얘기를 좋아한다. 가장 잘 팔리는 책도 대개 그런 종류의 책이다. 복된 모습은 아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어떤 목사의 설교나 책을 보면 죄 얘기는 거의 없었다. 한때 그의 교회는 미국 내 최대였고 멋진 예배당을 가진 교회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엄청난 빚으로 파산했고 결국 교회 건물이 가톨릭교회로 넘어갔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치우치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닫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것이다. 죄는 모든 불행의 원천이기에 죄 문제를 간과하고 얻은 복은 진짜 복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에 죄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길이 없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10-12절). 선하게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죄인이다. 교도소 선교를 하는 한 장로는 말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들킨 죄인이고 감옥 밖의 사람들은 들키지 않은 죄인이다.” 자신이 비참한 죄인이란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죄를 인정하는 사람을 결코 조롱하시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품어 주신다.
죄 사함을 받으려면 먼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죄를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설교는 듣기 싫지만 가장 듣기 싫은 설교가 영혼에는 가장 좋은 치료약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다 죄인이다. 죄가 없다는 사람이 더 죄인일 수 있다. 사람에게 죄의식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죄가 많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무감각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을 뚜렷하게 의식할수록 죄에 대한 인식도 뚜렷해진다.
< 하나님을 붙잡으라 >
자신이 의인에 가깝다는 생각을 버리라. 다 똑같은 죄인이다. 죄를 인정하고 죄인임을 인정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남의 허물을 통해 내 허물을 깨닫는 삶이다. 영안이 열리면 남의 허물을 보면서 자기 허물을 발견한다. 그때 남에게 나타나는 싫은 표정이 자신의 표정이고 남이 보여 주는 싫은 태도가 자신의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애통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 남에게 어떤 결점이 있으면 내게는 다른 결점이 있다.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남을 판단하지 말라. 남의 기질, 성격, 습관, 태도를 판단할 때는 최대한 신중을 기하라. 자신이 처참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복이다. 어거스틴은 세상에는 2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죄인임을 아는 죄인’과 ‘의인인 줄 착각하는 죄인’이다. 다 죄인이지만 죄인인 줄 아는 죄인은 희망이 있지만 의인인 줄 착각하는 죄인은 희망이 없다.
사람은 스스로 구원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없다. 그런 대책 없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대신 죗값을 치르게 하셨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겸손히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 또한 자신이 현재까지 살고 있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늘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붙들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로 죄의 사슬이 풀리고 구원받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죄 사함을 받은 존재에게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삶 중의 하나가 용서하는 삶이다. 참된 탁월함은 용서에 탁월한 것이다. 용서에 탁월한 자가 되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성도가 남에 대해 용서하길 원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세워 죄의 문제를 해결한 후 범사에 감사하고 남을 용서하는 삶은 구원의 은혜를 아는 자에게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실천 덕목 중 하나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