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9-11절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마음의 창을 닦으라 (로마서 2장 9-11절)
< 판단하기보다 격려하라 >
로마서 1장 하반부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비참한 모습을 묘사하며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2장에 들어서면서 그런 죄인이 남을 판단하는 모습은 결코 복된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판단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행동으로써 하나님이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그 말씀은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더 나아가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가만히 앉아서 판단하기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살피며 힘써 선행을 베풀라. 십계명의 제10계명은 탐욕을 버리라는 계명이다. 어떻게 탐욕을 버리는가? 탐욕과 맞서 싸우려고 하면 탐욕이 더 찾아올 때가 많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법이다. 선한 생각이 악한 생각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선한 행동이 악한 생각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이웃에게 눈을 돌리고 손을 펴는 행동이다.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조금 더 시간을 내라. 복을 받았다면 그 복을 어려운 사람과 함께 나누려고 하라. 내 돈을 내 맘대로 쓰는 것은 자유지만 복된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라고 말씀하신 것은 못 배워 무식해서 망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무책임의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식으로 망한다는 말씀이다. 인생의 다음 막이 펼쳐질 때 수치가 없도록 나눔에 인색하지 말라.
세상은 눈물을 강요하는 곳이다. 그런 세상에 왜 하나님이 교회와 교인을 두셨는가? 영혼을 구원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품어 주라는 뜻이다. 교회에서조차 수군거리며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큰 잘못이다. 남의 처지와 형편과 감정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쉽게 수군거리지 말라. 인간관계를 하고 교회 생활을 할 때 끊임없이 해야 할 기도는 이런 기도다. “남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 마음의 창을 닦으라 >
어느 날 한 부부가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갔다. 다음 날 둘이 거실에서 식사를 하는데 창문 너머로 이웃집 빨래 넌 것이 보였다. 더럽고 지저분한 빨래를 보고 아내가 말했다. “저 집 사람들은 지저분한 사람들 같아요. 좋은 세제를 써서 깨끗하게 빨래하지 어떻게 저렇게 더럽고 너저분하게 빨래하지요?” 그날부터 거의 매일 아내가 유사한 말을 했다.
몇 주 후 아내가 창을 통해서 보니까 이웃집 빨래가 깨끗했다. 깜짝 놀라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저것 봐요. 저 집 여자가 비로소 빨래를 깨끗하게 했네요. 어제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해요.” 남편이 말했다. “내가 오늘 아침 일찍 우리 집 창문을 닦았어요.” 알고 보니 이웃집 빨래가 더러웠던 것이 아니라 이웃집을 보는 자기 집 창문이 더러웠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남의 모습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창문이 깨끗하지 못한 것을 탓해야 할 때가 많다. 잘못된 것만 보지 말고 마음의 창을 깨끗하게 닦고 생각의 필터를 깨끗하게 관리하라. 남의 티끌보다 자기 들보가 더 큰 문제다. 남보다 내가 문제일 때가 많은 줄 알고 나를 좀 더 성찰하는 태도가 성숙함이다.
더러워진 자신의 눈의 창문과 생각의 필터를 깨끗이 닦지 않으면 상처와 소외와 고독이 인생의 동반자처럼 따라다닌다. 남을 판단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보다 남을 축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쌓으라. 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내게 축복이 되어 돌아오지만 남을 판단하면 그 판단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내게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판단은 판단을 낳고 격려는 격려를 낳는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