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절)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절)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절)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절)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알림) 온새기 월요일말씀과 홈페이지 주일설교의 차이
- 매주 월요일은 전날의 주일설교를 일부 발췌해서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로 보내는 날입니다.
- 오늘은 어제 주일설교의 약 60%를 발췌해서 보냅니다.
- 주일설교 100% 원문을 보기를 원하면 본 홈페이지 '주일설교' 란에서 보시면 됩니다
< 더 성도답게 되십시오 >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은 ‘사실을 이해하는 양적인 넓은 이해’이고 지혜는 ‘의미를 이해하는 질적인 깊은 이해’입니다. 지식의 근본은 물질세계를 아는 것이고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삶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알고 자신이 피조물 됨을 아는 것입니다. 피조물 됨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살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닌 한계 속의 자유입니다. 궤도 이탈은 자유가 아닙니다. 낭비나 방탕은 자유인의 삶이 아닌 노예의 삶입니다. 자유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시간과 인생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제한된 자유를 책임 있게 쓰면 자유의 폭이 확대됩니다. 그처럼 주어진 작은 것을 잘 활용하면 더 큰 것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작은 것을 주실 때는 그것만 가지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것을 보고 더 주겠다는 뜻입니다.
주어진 것을 지혜롭게 잘 쓰면 은혜와 축복의 가능성은 커집니다. 반면에 주어진 것을 방탕의 재료로 잘못 쓰면 하나님은 어느 때 그것들을 회수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주어진 물질과 건강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참된 자유는 진실하고 지혜롭고 부지런한 삶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사람은 의로운 만큼, 충성된 만큼, 그리고 최선을 다한 만큼 자유의 폭이 커집니다. 예레미야 48장 10절 말씀처럼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면 저주를 받지만 선한 일에 부지런하면 잡념과 한숨과 시험과 문제가 줄어듭니다.
살면서 많이 벌어 과시하려는 후진개념은 버리고 많이 벌어 나누려는 선진개념을 가지십시오. 선진국이 되기 전에 선진국민이 되고 각자가 조금 더 사람답게 되고 성도답게 되어야 합니다. 믿음과 내면이 흔들리는데 외형만 잘 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믿음을 바탕으로 진실과 성실을 앞세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수고 이상으로 보상해주십니다. 본문의 비유는 그런 보상의 원리를 잘 말해주는 비유입니다.
< 열 므나 비유가 주는 교훈 >
본문의 비유는 흔히 <열 므나의 비유>라고 일컬어집니다. 이 비유가 가르쳐주는 복된 인생이 되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창조적인 삶을 사십시오
예수님은 삭개오 집에서 이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가 가까워졌고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 생각한 사람들에게 바른 천국관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11절). 즉 당장 종말 심판이 이르지 않아도 믿음과 인내와 충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라는 교훈을 주려고 이 비유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어느 날, 한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였습니다(12절). 이 귀인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먼 나라’란 표현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이 당장 이뤄지지 않고 꽤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암시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나타나면 바로 로마를 쳐부수고 천국을 건설해 자기들이 왕 노릇 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급한 기대를 버리란 암시가 ‘먼 나라’란 표현에 들어있습니다.
그렇게 먼 나라로 갈 때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했습니다(13절). 유사한 메시지를 가진 비유인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는 3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달리 주었지만 열 므나 비유에서는 10명의 종에게 똑같이 한 므나씩을 주었습니다.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의 100배가 1므나이고 1므나의 60배, 즉 6000데나리온과 60므나가 1달란트입니다. 요새 노동자 하루 품삯이 10만원이라면 1므나는 약 1000만원인 셈이고 1달란트는 약 6억 원인 셈입니다. 1달란트에 비해 1므나는 적은 금액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장사밑천은 됩니다. 큰 부자인 귀인이 종들에게 그렇게 적은 돈을 주고 장사하라고 한 것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 므나는 물질 뿐만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시간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구원받은 강도가 부럽다고 합니다. 평생 맘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갔으니 부럽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그 강도는 이 땅에서 주님을 잘 섬길 시간이 없었음을 가장 아쉬워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때 일하고 헌신할 수 있을 때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모릅니다.
건강을 잃은 후 건강이 제일임을 깨달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인생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대개 새벽을 깨우는 새벽형 인간입니다. 남보다 두 시간 더 일찍 일어나 활동하면 인생을 거의 두 배로 살게 된다고 합니다. 아침을 지배하면 하루를 지배할 수 있고 하루를 지배하면 인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주어진 시간은 물론 물질과 재능도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잘 활용해야 합니다.
2. 결산의 때를 기억하십시오
귀인이 떠나자 그 백성들이 귀인을 미워해서 사자를 뒤로 보내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않습니다(14절).” 이 구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사실을 뜻합니다. 유대 리더들은 기득권을 위협하는 예수님을 미워했고 유대 백성들은 해방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예수님을 왕 삼기를 거부하며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도록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예수님은 왕위를 받고 돌아온 귀인처럼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온 귀인은 자신이 준 므나에 대한 결산을 위해 종들을 불렀습니다(15절). 그때 첫째 종이 나와 말했습니다. “주인님! 당신이 주신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16절).” 그는 ‘당신이 주신 한 므나’라고 하며 자기 것이 주인의 것이란 청지기 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런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그 보고를 듣고 주인은 작은 것에 충성한 그를 칭찬하며 열 고을을 차지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17절).
바로 이어서 둘째 종도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다고 보고했습니다(18절). 그러자 주인은 그에게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19절). 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을 주시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주셨을까요?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생생하게 교훈하기 위해서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상상을 초월한 큰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큰 꿈과 비전을 가지면서도 작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그렇게 충성스런 종들의 보고로 한참 분위기가 좋아질 때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습니다. 셋째 종이 와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주인님! 보세요.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습니다(20절).” 그는 주인이 준 돈을 수건에 싸두고 보관만 했지 땀 흘려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돈을 땅에 묻어두었지만 므나 비유에서는 수건에 싸두었다고 묘사합니다.
그처럼 게을러서 생산성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와 변명이 지나쳐 그는 주인을 은근히 비난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수건에 싸둔 것은 당신이 엄한 사람인 줄 알고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에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셨습니다(21절).” 자신의 나태함을 정당화하려고 주인을 엄격하고 까다로운 성과주의자이고 무자비한 고리대금업자처럼 묘사한 것입니다.
얼마나 큰 오해입니까? 작은 일에 충성한 두 종들에게 큰 보상을 한 것을 보면 주인은 은혜가 넘치는 주인이었습니다. 그런 주인을 이익만 챙기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자신이 힘써 이윤을 남겨도 주인이 다 빼앗아 갈 줄 알고 자기 사명을 외면한 것입니다. 얼마나 계산적인 삶입니까? 계산적인 삶은 항상 더 큰 것을 놓치게 합니다. 은혜는 대개 계산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너무 계산하면 값없는 은혜가 주어지기 힘듭니다.
충성할 때도 무엇을 얻으려고 충성하지 말고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마땅히 섬겨야 할 사람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충성하십시오. 자기번영에 몰두하면 자기번영의 뜻을 이루기 힘들지만 주인의 번영에 집중하면 오히려 자기번영의 은혜를 입습니다. 교회생활에서도 교회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교회의 지경 확대를 위해 힘쓰면 신기하게 자기 지경이 확대됩니다. 나중에 결산의 때에 보면 처음의 두 종처럼 행동한 사람과 셋째 종처럼 행동한 사람은 그 열매가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런 결산의 때를 늘 기억하며 사십시오.
3.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셋째 종의 은근한 비난을 듣고 주인은 그를 무섭게 질책했습니다.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 알았느냐? 그러면 왜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았느냐? 그랬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22-23절).” 주인이 이윤을 야박하게 추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은행에 맡겨 이윤이라도 얻게 하지 왜 그냥 수건에 싸두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주실 때 이윤을 바라지 않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무슨 이윤을 바라겠습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주신 이유는 그것을 활용해 땀의 기쁨과 삶의 보람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도구로 활용하란 뜻입니다. 그런 주인의 선한 의도를 오해하고 비난의 말을 한 종에게 주인은 악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악한 일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는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국 주인은 곁에 있던 호위무사들에게 셋째 종이 가진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했습니다(24절). 그때 호위무사들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습니다(25절).” 그 말에는 10므나를 가지고 10고을의 권세를 가진 자에게 1므나를 빼앗아 더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의미도 있지만 너무 부를 편중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주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절).” 이 말씀은 부익부빈익빈을 정당화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언뜻 보면 주인의 조치가 너무 야박한 것 같지만 이 비유는 천국 심판과 관련된 비유로서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많이 받고 작은 일이라고 외면하면 결국 헐벗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에게 무엇이 주어진 것은 다 뜻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고난에도 뜻이 있습니다. 그처럼 주어진 것으로 열심히 좋은 것을 남기려고 해야 한다는 도전의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주인은 마지막으로 명령했습니다.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27절).” 그때 주인은 무책임한 종의 것을 빼앗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떠났을 때 자신의 왕 즉위를 반대하는 밀사를 보낸 원수들을 단호하게 죽이라고 말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방해하는 세력은 마지막 때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면서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우습게 알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고 왜곡하면 어떻게든지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요새 인터넷을 보면 예수님을 조롱하는 무서운 말들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와 교인의 잘못으로 그런 비난이 초래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심하게 내뱉는 말들에 대해서는 그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셋째 종처럼 사명과 책임을 외면해서 그저 구원만 간신히 얻는 실패한 인생이 되지 말고 늘 결산의 날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종은 주인 앞에서 결산할 날이 올 줄 모르고 무책임하게 살았기에 가진 한 므나마저 빼앗겼습니다. 그처럼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있는 것도 빼앗기고 천국 상급도 잃습니다. 반면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과 일에 더욱 헌신하면 삶의 의미와 축복도 더해지고 천국 상급도 커질 것입니다.
< 거룩한 부익부를 추구하십시오 >
왜 본문의 셋째 종이 실패한 인생이 되었을까요? 한 므나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적은 돈으로 무슨 장사를 하느냐고 생각하고 그냥 수건으로 싸두었습니다. 그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작게 생각하고 일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의외로 많다고 생각하며 생각 단계부터 승리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남성이 목사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전 끝났습니다. 사업도 실패하고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종이 한 장을 꺼내 들고 말했습니다. “성도님! 다 잃었다고 했는데 그래도 남은 것은 한번 적어볼까요? 아내가 있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네. 아마 지금도 엎드려 기도하고 있을 겁니다.”
계속 대화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있습니까?” “착한 아이 셋이 있습니다.” “친구는 있습니까?” “예. 친한 친구 몇 명은 있습니다.” “건강은 괜찮아요?” “예!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들은 다 남아있네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따지고 보니까 그러네요. 다시 힘을 내 새롭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서보다 남은 것을 보지 못해서 불행을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어떤 분은 과거에 시간을 너무 낭비한 것을 후회하고 내일의 비전을 이룰 시간이 너무 없다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지혜를 앞세우고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은 무엇보다 큰 자본입니다. 그 자본을 가지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얼마든지 회복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거룩한 큰손 되게 하소서! 남편에게도 큰 믿음의 축복을 주소서! 앞으로 선교 비전을 멋지게 이루게 하소서! 저희 교회도 나눔의 모델이 되게 하시고 제가 그 일의 선봉장이 되게 하소서!” 그처럼 “없다! 작다!”고만 하지 말고 자신의 위대한 가능성을 믿고 찬란한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십시오.
그처럼 셋째 종이 한 므나의 가치를 가볍게 여긴 것도 잘못이지만 더욱 큰 잘못은 그가 한 므나를 투자하는 모험과 희생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비전을 이루고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비전의 대가를 과감히 지불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종은 주인이 준 므나를 땀을 닦아야 할 수건에 그냥 싸둔 것입니다. 그처럼 꿈과 비전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릴 줄 모르면 뜻도 이룰 수 없고 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열 므나를 남기면 열 고을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은 심은 것 이상으로 거두게 하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시인할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풍성하게 드리면 하나님도 풍성한 열매를 우리에게 내려주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거룩한 비전에 크게 헌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천국에 돈을 가지고 갈 수는 없기에 이렇게 좋은 일에 먼저 보냅니다.” 말만 들어도 인물입니다.
잘 쌓는 거물만 되지 말고 잘 나누는 인물이 되십시오. 드림이 부족하면 이룸도 부족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의 당대와 후대 중에 거룩한 큰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을 믿고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꿈과 비전을 위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이 없으면 그 비전은 신기루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거룩한 꿈과 비전을 위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이 있으면 신기루 같은 비전도 조만간 현실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문서선교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문서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큽니다. 사도 바울이 가진 엄청난 영향력의 뿌리는 ‘그가 세운 교회’보다 ‘그가 쓴 성경문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캘빈은 26세에 쓴 역작 <기독교 강요>로 장로교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의 영향력도 그가 연 수많은 집회보다 그가 쓴 다수의 저서를 통해 지속성이 생긴 것입니다. 저희 기독교선교연맹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님과 정신적 지주인 토저의 영향력도 그들이 남긴 다수의 문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처럼 문서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계속 성경강해를 해서 약 20년에 걸쳐 지금까지 성경전체의 3분의 2 강해를 끝냈습니다. 300페이지짜리 책 70권 분량입니다. 약 6년 전부터는 <온라인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준비된 문서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기도하던 중 최근에 한 분의 은밀한 후원으로 <온라인 새벽기도(온새기)>가 드디어 <월간 새벽기도(월새기)>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9월의 매일 새벽기도 분량을 담은 창간호는 8월 10일 경 발매될 예정입니다. 온새기는 40%의 내용만 발췌한 것이지만 월새기는 100%의 내용을 다 수록한 것입니다.
가장 고심한 문제는 가격 책정 문제였습니다. 창간호 원고가 약 250페이지 분량이고 칼라 하드카버에 2도 인쇄까지 하니까 아무리 적어도 3천 원은 받아야 했습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이 목사야! 어차피 문서선교를 하기로 한 것이니까 나눔의 본을 보이고 문서선교의 취지를 살리길 바란다.” 그래서 한 권에 천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천원을 받는 이유는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직접 지불해야 매일 그 책으로 한 달 간 새벽기도를 하는 가치를 더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격을 책정하고 최소한 10권 이상 주문받되 택배비 3천 원은 따로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월새기 비전을 위해 기도하는데 며칠 전 하나님이 이런 감동을 또 주셨습니다. “이 목사야! 어차피 문서선교를 하는 것인데 택배비를 따로 받을 게 뭐냐? 시골 목회자나 개척교회 목회자는 그것도 부담된다.” 그래서 택배비도 받지 말자고 하자 총괄본부장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진짜 영적인 CEO이십니다.” 그 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칭송받아서 큰 힘이 된 것이 아니라 계산을 초월한 기쁜 동의에 큰 힘이 된 것입니다.
계산적으로 따지면 내리기 힘들고 따르기 힘든 결정이지만 어느 비전이든지 계산이 초월해야 계산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처럼 기쁜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살면서 있는 자는 더 있게 되고 없는 자는 더 없게 되는 원리를 항상 기억하며 사십시오. 그 원리가 일상의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있는 자’는 부족함을 느끼기에 더 사모해서 더 있게 되지만 ‘없는 자’는 부족함에 대한 의식조차 없기에 사모하지 않아서 더 없게 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한 구역장이 구역원들에게 각자의 거룩한 소원을 나눠보자고 했습니다. 그때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한 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사랑의 은사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까 자신의 사랑을 늘 부족하게 느낀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는 사랑이 더 넘치게 됩니다. 또한 그때 누구보다 앞서 헌신하는 다른 분이 말했습니다. “저는 헌신하는 마음이 더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헌신적인 사람이니까 자신의 헌신이 부족함을 안타까워하며 더 헌신하길 원한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도 헌신적인 삶이 더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있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면서 더 있으려고 하니까 결국 더 있게 되고 ‘없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해서 더 있으려고 하지도 않으니까 결국 더 없게 됩니다. 성도는 물질적인 부익부는 잘 억제해야 하지만 거룩한 부익부는 더욱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좋은 것이 많이 있게 하소서! 구령의 열정과 기도의 목마름이 있게 하시고 사랑과 나눔이 있게 하소서!” 그처럼 좋은 것이 있기를 추구하면서 거룩한 부익부의 주인공이 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