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22-25절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참고 기다리라 (로마서 8장 22-25절)
< 열린 귀를 가지라 >
자연도 탄식하지만 성도들도 탄식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깊은 영성을 가졌던 이유는 그런 탄식소리를 듣는 귀가 있었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도 겉으로 보면 멀쩡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탄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처럼 곳곳에서 들려오는 탄식소리를 듣고 같이 기도하면 신기하게 하나님의 소리가 따라서 들려온다. 왜 그런 탄식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신적인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 소리가 얼마나 큰가? 그 소리 때문에 정작 들어야 할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많다. 하루 중의 잠깐만이라도 귀를 세상의 소음에서 해방시키라.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라도 들으려고 하면 하나님 음성도 아련히 들려올 것이다. 그 음성을 들었거든 침묵을 끝내고 세상에 사랑과 위로를 전하려고 나서라.
세상이 악하다고 침묵하거나 불평만 하지 말라. 탄식소리가 나는 곳에 가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라. 성도란 겨울과 같은 상황에서도 봄을 노래하면서 봄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어떠하든 자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면 거기에서 희망은 시작된다. 그런 꿈과 희망을 가지고 헌신하며 영혼 구원과 세상 변화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라. 찬란한 꿈은 꿈꾸는 자들의 헌신을 통해 이뤄진다.
큰 것에 길들여지면 하나님의 은혜가 작아 보이지만 그 작아 보이는 은혜가 세상의 탄식을 잠재운다. 작은 실천에 힘써서 길거리에 떨어진 종이도 줍고 신호등도 잘 지키려고 하라. 성도답게 살려는 작은 실천을 통해 꾸준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면 그런 노력들이 큰 흐름이 되어 탄식의 소리가 생명의 노래로 바뀔 것이고 그때 고통은 오히려 복된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것이다.
< 참고 기다리라 >
고통이 축복의 통로라면 기다릴 줄 알라. 인간에게 소망은 산소처럼 중요하지만 그 소망의 근거가 대개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에 오래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인생의 성패는 기다림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루아침에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약간 빠르게는 가되 너무 급하게는 가지 말라. 급히 뭔가를 이루려고 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기간을 가지라.
기다림이 없이 좋은 작품은 생기지 않는다. 과속은 사고를 낳는다. 사람이 원하는 때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는 다르고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다르다. 하나님은 사람의 미숙함과 철없음을 기다려 주시고 그를 향한 기대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배우자와 자녀와 친구도 기쁘게 잠잠히 기다려 주라. 사람은 잔소리로 변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변화된다. 나의 변화 속도만큼 상대도 변한다.
사람의 기다림 이상으로 하나님이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기다림에 동참하라. 진실한 믿음은 기다림을 감수하게 하고 기다리는 기간을 행복하게 만든다. 기다릴 대상과 소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기다릴 때는 말을 줄이고 인내하며 기다리라. 불평하며 기다리는 것은 좋은 기다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앞세워 여유롭게 기다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을 이루신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진리에 눈을 뜰 수 있고 소망도 커질 수 있다.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넉넉하게 기다리라. 바쁜 현대인에게 새벽의 말씀 묵상과 기도가 시간 낭비처럼 보이지만 삶에서 그 시간처럼 사람을 발전시키고 성숙시키는 시간은 없다. 욕망을 절제하고 삶의 속도를 가끔 늦춰 침묵하고 기도하면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로 산다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내일의 소망도 넘치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